본문 바로가기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겨자씨와 연한 가지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31 _겨자씨와 연한 가지

2024년 6월 셋째 주 칼럼(2024.6.16. ~ 2024.6.22.)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

 

에스겔 17:22-24

고린도후서 5:6-10

마가복음 4:26-34

 

 

에스겔이 활동한 시대는 바벨론 포로시대이다. 바벨론 포로시대에 유다 예루살렘이 아닌 바벨론에서 활동한 선지자가 에스겔이다. 바벨론 포로시대에 활동한 또 다른 선지자는 다니엘이다. 에스겔과 다니엘이 예언한 방식은 동일하다. 환상과 비유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포로시대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는 그전 선지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예언하게 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말씀을 전달하는 방식이 바벨론포로시대와 같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_막4:33-34

 

바벨론포로시대와 예수시대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미리 바벨론포로시대를 통해 이러한 시대에 에언 방식을 말씀 해 주신 것은 아닐까?

예수시대는 말라기 선지자 이후로 에언이 끊긴 긴 암흑의 시기를 보내는 시기이기도 했다. 죄와 율법의 포로가 되어 있는 시대라는 점이 에스겔이 활동하던 바벨론의 포로가 된 시대라는 점에서 같아 보인다.

 

오늘 에스겔 말씀의 비유는 높은 나무를 낮추시고 낮은 나무를 높이신다는 비유의 말씀이다.

오늘 마가복음 말씀의 비유는 겨자씨 비유로 작은 겨자씨가 후에는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는 비유의 말씀이다.

 

이 두 비유에 숨겨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무엇일까?

에스겔 17장 22-24절은 바벨론과 유다에 대한 예언이라고 볼 수 있다. 높은 나무, 높은 가지는 바벨론을 상징하고 낮은 나무, 연한 가지는 다가올 메시아 왕국을 상징한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으로 유다의 지식층에 속했다. 유다는 여호야긴이 왕으로 있던 때에 바벨론에게 다시 정복을 당한다. 이 때도 바벨론의 정복정책을 따라 여호야긴 왕과 함께 수많은 지식층과 귀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그때 에스겔도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겔1:1-2, 렘52:29, 왕하 24:8-17)

에스겔이 포로로 끌려와서 30살이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선지자로 살아가게 하신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_겔1:1

 

에스겔에게 한 가지 환상을 보여주신다. 백향목 꼭대기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옮겨 심으시고 그 높은 가지에서 나온 새 연한 가지를 꺾어 다시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는 환상이다.

높은 나무가 낮은 나무가 되는 순간이다. 느브갓네살이 유다의 높은 가지를 취하여 바벨론에 이식시켰다. 유다에서 높은 가지가 바벨론에서는 낮은 가지로 심겨졌다. 낮아진 가지에서 새로 나온 연한 가지를 다시 꺾어 높은 곳에 심으신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우뚝 솟은 산에 심되” _겔17:22

 

마가복음 4장 30~32절은 겨자씨 비유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이다. 하나님 나라는 바로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말한다. 겨자씨는 정말 작은 씨앗이다. 하지만 땅에 심겨지면 새가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겨자씨는 하나님 나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가장 작은 자로 오셨다.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나사렛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라나셨고, 목수가 되셔서 일꾼으로 삶을 사셨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삶을 사셨다.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삶의 모습이다. 그런 나사렛 목수 예수는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신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_눅3:23

 

어느 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천국비유 말씀을 전하신다.(마13:31-32)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겨자씨 한 알은 바로 예수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땅 위에 모든 씨보다 작은 것”으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셨다. 그런데 그런 예수께서는 그 어떤 나무보다 더 큰 나무가 되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품으시는 나무가 되었다.

 

하나님 나라는 자기 스스로 높은 나무가 되고 높은 가지가 되지 않는다. 높은 나무는 낮추시고 높은 가지 꺾으셔서 낮은 곳에 심으시고 낮아지게 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이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너무 작아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놀랍게 조금씩 조금씩 커 가더니 새들이 깃들고 사람들에게 그늘과 열매를 나누어주는 나무가 된다.

하나님 나라는 나에게 있는 작은 것들로 인해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족하고 작은 것, 약한 것들로 인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_고후12:9-10

 

바울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겨자씨 한 알, 연약한 가지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세워진다.(고후4:16)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게 된다. 겉사람인 몸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되면 주와 따로 있는 인생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으면 겨자씨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_고후5:7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_고후5:10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이 때 우리는 각각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것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보여져야 할 모습은 겨자씨와 같은 모습이요, 연한 가지와 같은 모습이다. 보이는 것보다 속사람을 새롭게 하고 겸손한 삶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_잠16:18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의 가진 짐은?  (0) 2024.06.28
아무 것도 없는 자  (0) 2024.06.21
죄가 가려진 자  (0) 2024.06.07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1) 2024.05.31
성령이 임하는 모임  (1) 2024.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