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46 _우리를 위하는 사람
2024년 9월 다섯째 주 칼럼(2024.9.29. ~ 2024.10.5.)
성령강림절 후 열아홉째 주일
민수기 11:24-29
야고보서 5:13-20
마가복음 9:38-50
민수기 11장에 따르면 만나와 메추라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진 시기가 다르게 기록된다. 만나가 먼저 진중에 내렸고 나중에 백성의 요구에 고기를 주시기 위해 메추라기를 보내신 것으로 기록된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_민11:4
메추라기로 고기가 제공되기까지 과정은 사실 하나님을 원망하는데에서 시작된다. 출애굽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함께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다른 사건과 다르게 분명하게 그 시작이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어서 온 이스라엘로 퍼져나갔다고 기록한다. 목마를 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마실 물을 주셨고 배고플 때에 만나를 주셔서 굶주리지 않도록 해 주셨다. 심지어는 그 만나로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해 먹었는지 모른다.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_민11:8
광야에서 굶주리지 않고 매일 아침에 이슬처럼 내려앉은 만나로 다양한 음식을 해 먹었던 이스라엘 백성이다. 이보다 더 감사하고 놀라운 기적이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다른 인종들에게서 애굽에서 먹었던 수많은 다른 음식들과 고기를 먹고 싶은 탐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원망과 불평이 모두에게 퍼져나간다. 각기 자기 장막에서 애굽에서 먹었던 음식과 고기를 떠올리며 울며 불평한다. 모세가 그 소리를 듣게 된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세에게 찾아와 하소연하며 불만을 토로했을지도 모른다.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의 소리에 모세도 괴로워한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_민11:11-13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방법을 알려주신다. 백성의 불만과 원망을 들어줄 지도자를 뽑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백성들이 원하는 고기를 먹이신다. 백성의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70명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도움을 주게 하신다. 그렇게 70명을 기명하고 그들을 장막에 다 불러 모은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대표로 세운 70명에 대한 증표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시고 장막에서 예언을 하게 하신다.
그런데 70인 장로로 기명된 자 중 두 사람 엘닷과 메닷이 모세가 모이라고 한 장막에 참석하지 못하고 진영에 머물러 있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모세와 70장로가 모인 장막이 아닌데 진영에 머물러 있는 엘닷과 메닷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진영에서 예언하게 하신다.
이 장면을 보고 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와서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옆에 있던 여호수아는 그들을 제재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건의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을 그의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말하며 그들의 건의를 일축시킨다.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마가복음에도 기록된다.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_막9:38
어느 날 요한이 예수께 와서 자신이 조금 전에 겪었던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가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인 제가 우리를 따르지도 않으면서 선생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그들에게 경고하고 못 하게 했습니다.”라고 예수께 보고합니다.
요한은 선생님께 잘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말씀드렸는데 오히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_막9:39-41
예수의 이름으로 능한 일을 하고 예수를 비방할 사람이 없다 하시고 반대하지 않는 자가 우리를 위하는 자라는 말씀을 하신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에게 서로를 위하고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서로의 상을 잃지 않을 것도 말씀하신다.
우리는 너무 서로를 경계하고 비난하기에 바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끼리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그것이 상이 된다.
우리가 함께 더욱 힘써야 할 것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임을 야고보는 자신의 서신의 마지막에 당부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주는 냉수 한 그릇이 될 수 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_약5:15
삶을 살아가다보면 고난을 당하지 않는 자 없고 집집마다 힘든 문제가 없는 집이 없다. 그렇기에 사실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 특별히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돌아서게 하면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고 허다한 죄를 덮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김권민 목사의 경우 이단사이비를 오래 연구하고 이단에 빠진 자들을 돌이키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이 말씀을 보며 김권민 목사께서 하시는 일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정말 기뻐하는 일이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안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서로를 반목하기보다 서로를 위해 더욱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경직된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안된다. 모세가 그러했고 예수께서도 그러했다. 유연한 사고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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