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73_ 부활의 확실한 증거
2021년 4월 둘째 주 칼럼(2021.4.11. ~ 2021.4.17.)
사도행전4:32-35 요한일서1:1-10 요한복음20:19-29
부활절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교회력에서 부활절 후 50일을 ‘기쁨의 50일’로 기념하며 지켰습니다. 부활절 후 일곱째 주간을 이렇게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성령강림절’로 이어집니다.
돌아오는 주간은 기쁨의 50일 두 번째 주간으로 보내게 됩니다. 기쁨의 50일 두 번째 주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20장 19-29절, 사도행전 4장 32-35절, 요한일서 1장 1-10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시간의 순서를 따라 함께 말씀을 살펴보면서 부활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_요21:19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로 인해 제자들은 엄청 공포감에 휩싸여 자신들도 잡히면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걸어 잠그고 두려워 떨며 숨어 있습니다.
두려움에 떨며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지난 3년의 시간들을 회상합니다.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심하고 나섰던 자신들을 떠올립니다. 예수님과 함께 라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따랐던 스승께서 돌아가셨으니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스승님을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하고 도망쳐버린 죄책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따랐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스승님에 대한 억울함! 스승의 제자로 잡히면 스승처럼 죽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
저녁이 되었지만 저녁식사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함께 모인 자리에는 각자의 상념에 빠져 정적만이 흐릅니다. 그런데 그떼 이 정적을 깨며 분위기에 맞지 않게 ‘평강’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마치 “평안하니? 무슨 수심이 이리도 많아서 이리도 심각하게 있느냐?” 묻는 듯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다 도망쳐버린 제자들을 향해 그 어떤 분노도 다그침도 따져 묻지도 않으시고 그저 “평강이 있을지어다” 인사합니다. 예수님의 경지입니다. 우리 모두가 도달해야 할 경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느 순간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바로 저 마음 말입니다. 그리고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는 그런 사람말입니다.
부활하신 스승을 처음 만난 제자들은 스승의 이 한 마디에 서로 뒤엉켜 부등켜 안고 눈물바다가 됩니다.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했떤 의심 많은 도마에게도 스승은 놀라운 경지로 도마에게도 동일하게 한 마디합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저 이 한 마디 인사면 족했습니다. 이 한 마디에 의심으로 가득 차 있던 도마의 마음이 눈이 녹듯 사르르 녹아내립니다.
어쩌면 우리는 말이 너무 많은 걸 줄도 모릅니다. 진심을 담은 말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큰 위로와 평안을 받았던 제자들처럼 예수를 따랐던 수많은 이들도 40일 동안 여러 차례 보이시므로 큰 위로와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_행1:3-4
다시 자신들의 고향과 생업으로 돌아갔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보이셨고 마지막 분부를 하십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서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함께 보내면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을 통해 더욱더 분명하게 공동체가 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하고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것이 너무도 분명한 ‘부활의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예수를 통해 철저히 배운 제자들은 예수의 본을 따라 똑같이 부활의 확실한 증거인 교회공동체를 세웁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_행4:32-35
교회공동체가 긍극적으로 이루어야 하는 모습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이러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이러한 모습은 그때 이야기일 뿐이야 지금은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서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와 제자들이 함께 했던 공동체와 초대교회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공동체는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를 통해서 세워지길 바라는 공동체입니다.
열두 사도 중 유일하게 자신의 생애를 다 살다간 요한사도는 예수를 통해 배웠던 교회공동체를 자신의 생애 마지막까지 세워갔습니다. 100세까지 살았던 요한사도이기에 1세기 교회의 산 증인이 바로 요한사도가 됩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요한서신은 1세기 사도들을 통해 세우신 교회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를 계속해서 세워 올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님과의 사귐”이라고 고백합니다.
요한사도는 “하나님과의 사귐”을 내가 어떻게 누리고 있는지 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보냈던 3년의 시간을 떠올려보면 스승님의 삶 그 자체가 말씀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 때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들었던 그 감동을 지금도 똑같이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은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입니다. 이러한 1세기 사도들이 세웠던 교회는 너무도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다시 깊이 생각하고 유산을 물려받아 세워졌던 초대교회처럼 계속해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의 공동체로 세워지는 교회가 말씀으로 세워지는 교회임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교회가 부활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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