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이야기 #3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
지난 번 예루살렘 교회이야기를 이어서 담아보겠습니다.
당시에도 많은 종교가 있었습니다. 유대교에는 성전과 회당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도시마다 우상숭배의 상징인 멋진 성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는 신전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되는 예수를 믿는 공동체는 전혀 세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세워집니다. 건물 중심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 건물이 따로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함께 모일 수 있는 곳이면 됐습니다. 종교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존의 종교적 방식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혁명이었습니다. 신전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 함께 모일 수 있는 곳, 그렇게 함께 모일 수 있는 곳이 “가정”이었습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에서나 누구나 함께 모이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기존의 질서와 신분이 엄격하게 구분되었던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공동체는 사람들에게 함께 하고픈 충분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이러한 매력을 상실했습니다. 교회에 새로운 신분이 시작됐습니다. 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 이것이 마치 특별한 것인양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교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께서는 열 두명의 제자를 뽑으시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이미 예수께서 교회의 모형을 만드셨고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람이 모이고 세력화되면 으레 중심지를 만들고 종교라면 그곳을 성지화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선동하지도 않으셨고 한데 모으시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이곳저곳 돌아다시면서 가르치시고 고치시고 복음을 전파했을 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회의 원형은 예수를 중심으로 모였던 12제자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 3년 동안 훈련을 받은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 땅에 세우시고자 했던 교회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전통을 따라 제자들도 예수처럼 건물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모습이 잠깐 살펴본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4:32)
게다가 예수를 믿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에서는 유무상통까지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기존전통교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서로의 것을 나의 것으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행4:34-35)
더욱 놀라운 것은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 안에는 가난한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체제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동체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엄청나게 늘어난 성도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나뉘어져 각 가정에서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의 예배와 모임이 어떠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순회지도자가 되는 수많은 “집에 있는 교회”로 이루어진 네트워크(연합) 공동체였습니다. 3만명을 12명이 나누어서 이끌었다고 상상해 보면 한 제자의 그룹이 2,000~2,500명 정도 됩니다. 하나의 집에 있는 교회의 인원을 추정해 보면 15-30명 사이가 됩니다. 여기서 한 가정교회를 25명으로 가정하면 한 사도가 순회하며 지도했던 가정교회의 숫자가 대략적으로 100개 정도 되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 한 명이 100개 정도 되는 “집에 있는 교회”를 순회하며 예수님의 그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 이끌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일곱 일꾼(집사)를 뽑는 장면이 있습니다. 일곱 일꾼을 뽑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행6:2) 이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이 양육하고 세웠던 “집에 있는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접대를 일삼게 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집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예루살렘 교회의 전체 의제로 삼고 연합된 공동체 차원에서 접대하는 일과 제정적인 일을 맡을 이들을 따로 구별하여 세웁니다. 그들이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행6:5) 이렇게 일곱 명이었습니다. 이 일곱 명도 분명 각 “집에 있는 교회”의 지역지도사로 교회를 섬기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스데반은 순교하기 전에 너무도 멋진 '광야교회설교'를 합니다. 스데반의 이 설교는 당시 교회의 모습이 집에 있는 교회였음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빌립은 어떻습니까?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을 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까지 주었습니다. '집에 있는 교회' 지역지도자로써 교회를 이끌어가는 자들이었기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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