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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92 _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

2023년 8월 넷째 주 칼럼(2023.8.27. ~ 2022.9.2.)

성령강림절 후 열셋째 주일

 

이사야 51:1-6

로마서 12:1-8

마태복음 16:13-20

 

 

 

예수께서는 두로와 시돈을 지나 빌립보 가이사랴, 가이사랴 빌립보로 향하십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일어난 사건은 마태복음 16장에 기록됩니다. 마태복음 16장은 마태복음의 중심에 있는 장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저는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이재철 목사의 「내게 있는 것」홍성사에서 2003년에 출간된 책입니다. 이재철 목사가 “청년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주제로 발행되었던 책입니다. 이재철 목사의 설교를 모아 엮은 책인데 이 책의 본문이 마태복음 16장의 베드로 신앙고백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재철 목사의 설교만큼 이 본문을 시원하게 해석해 준 글을 보지 못했고 저도 이 글을 읽고 큰 감동과 함께 그렇게 해석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나누는 이야기는 이 책을 기반으로 정리되었음을 먼저 밝히고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_마15:21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_마16:13

 

 

본문은 시기적으로 3년에 걸친 예수의 공생애가 마무리에 돌입한 마지막 시점입니다. 예수의 남은 최후의 과업이라면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정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향하십니다. 변화산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 사역을 모두 마무리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예루살렘 상경기를 시작하시기 위해 변화산으로 향합니다. 변화산으로 향하시던 길에 ‘가이사랴 빌립보’를 통과하시게 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스라엘 최북방 헬몬산 기슭 해발 345미터 지점에 위치한 머리 위로 헬몬산 정상이 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입니다. 분봉왕 빌립은 로마 황제의 칭호 ‘카이사랴’와 지신의 이름 ‘빌립’을 덧붙여 ‘가이사랴 빌립보’라 명명합니다. 이것은 또한 가아시랴가 빌립에게 선사하는 도시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첫째, 로마 황제의 위용에 걸맞는 규모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 그 도시 중심이나 가장 높은 곳에 반드시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바로 이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곳이었습니다.

갈릴리 시골에서 올라온 제자들과 예수의 몰골은 가이사랴 빌립보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해도 남루하기 그지 없습니다.

 

로마 황제의 도시, 웅장한 도시와 우뚝솟은 황제를 위한 신전 앞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자신들이 들은대로 예수께 대답합니다.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하나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향해 생각할 때 예수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선지자의 하나라고 봅니다. 황제는 신으로 여겨지며 인간들의 경배를 받는 존재이지만 예수는 인간의 경배를 받을 대상이 아니라 그저 초라한 행색에 이미 이 땅을 거쳐간 유대 선지자 이상일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황제의 웅장한 신전 앞에서 남루하기 그지 없는 예수를 향해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베드로의 이 고백은 로마 황궁의 황금보좌에 앉은 로마황제가 아닌 비록 걸인 같은 몰골로 서신 나사렛 예수 바로 당신만이 인간을 구원하실 그리스도시라는 위대한 고백입니다.

이 세상을 압도하는 황제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주님의 논리를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황금만능주로 대변되는 황제의 논리인 메머니즘의 경제논리를 배격하고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의 논리를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이 고백 위에 예수께서는 세 가지를 천명합니다.

첫째는 반석과도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를 친히 세우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교회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의 모임으로써 이 세상을 압도하고 있는 황제의 논리에 빠지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원한 논리를 쫓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교회를 음부의 권세 즉 사망의 권세, 사단의 권세가 결코 이기지 못할 것임을 말씀합니다. 셋째는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고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그대로 될 것임을 약속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많고 많은 도시와 마을 중에서 왜 하필이면 황제의 도시인 가이사랴 빌립보를 택하시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존재적 질문을 던지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드려진 신앙고백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가야 할 고백입니다. 바울사도는 로마서 12장에서 이와 동일한 고백을 합니다. 이신칭의의 신앙의 자세가 무엇인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_12:1-2

 

 

이 세상은 황제를 숭배하라고 계속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_사51:2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1)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라” _사51:6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법칙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가이사랴 빌립보를 찾으시고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를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리스도를 선택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 를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신앙고백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이렇게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하나님의 성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룹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모임인 교회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함께 세워가야 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