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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부활의 증인

‘집에 있는 교회 칼럼’ #72_ 부활의 증인

2021년 4월 첫째 주 칼럼(2021.4.4. ~ 2021.4.10.)

이사야25:6-9 고린도전서15:1-11 마가복음16:1-8

2021년에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습니다. 마치 죽은 것 같이 앙상한 가지에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은 항상 이때 즈음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주님의 부활 소식은 그렇게 자연만물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해져옵니다.

예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안식일인 토요일에 그날의 이름대로 무덤에서 안식하십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삼일째 되는 안식후 첫 날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십니다.

분명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나를 잡아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다. 그리고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그런데 이것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자신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고 병을 고쳐주셨던 과거의 예수만을 추억할 뿐입니다. 마가복음은 이러한 여인들의 이야기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합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이렇게 세 여인은 예수께서 묻히신 무덤을 찾습니다. 이 세 여인은 그저 돌아가신 예수만을 생각할 뿐입니다.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못하고 예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성경은 그 때가 “안식 후 첫날”이라고 기록합니다. 목요일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대제사장 무리에게 잡히시고 다음날 금요일에 채찍질 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십니다. 토요일 무덤에서 안식하시고 일요일 삼일 째 되는 날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마가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안식일이 지나매”, “안식 후 첫날”이라고 기록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 여인들이었지만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 그 무덤으로 가며” _막16:1-2

삶을 살아가다보면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가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제자들과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와 부활을 잊어버리고 생각조차 못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의 부활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 여인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들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오늘 다시 부활의 증인으로 세워집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증인이 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증인이 있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 소식을 듣고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에게 부활에 대해 설명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설명할 때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바울사도는 주님의 부활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바로 증인입니다. 바울사도는 주님의 부활의 증인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바울 자신까지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증인들입니다.

당신은 주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어떻게 직접 눈으로 보지도 못했으면서 부활을 믿을 수 있으십니까?

우리는 바울을 통해서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지만 감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보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라고 자신을 기록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자신에게 보이셨음을 말합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_고전15:8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부활의 증인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자신에게 찾아온 주님을 만납니다. 바로 그 순간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갑자기 믿어지기 시작하고 십자가가 믿어지기 시작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주님과의 첫사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바울의 고백처럼 분명 부활의 증인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먼저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 부활이 내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넷째 강림이를 키우다보니 이번에는 이전보다 육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됩니다.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책을 보는데 아이들에게 ‘폭풍의 시기’가 열 번 정도 찾아온다고 합니다. ‘폭풍의 시기’는 아이가 칭얼대고 보채고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아이가 아픈 것같이 느껴지는 힘든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아이가 새롭게 도약하는 중요한 순간입니다. 십자가에 이어 부활이 찾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부활의 증인이 거쳐가야 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먼저 있어야 부활도 있게 됩니다. 죽음과 같은 순간이 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부활의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할 부활의 소망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_사25:8

부활의 증인에게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십니다. 눈물을 씻기시고 수치까지도 모두 제하여버리십니다.

주님의 부활이 분명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부활의 증인들에게 사망대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기쁨을 더해 주셨습니다. 연약함과 수치가 강함이 되게 하셨습니다. 삶으로 부활을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바로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