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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집에 있는 교회 칼럼’ #74_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2021년 4월 셋째 주 칼럼(2021.4.18. ~ 2021.4.24.)

 

사도행전3:12-19

요한일서3:1-7

요한복음24:36-48

 

  기쁨의 50일, 부활절 셋째 주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번 주간 성서일과 말씀도 주제는 ‘증인’입니다. 무엇에 대한 증인입니까? 네 부활에 대한 증인입니다. 우리는 기쁨의 50일의 기간 더욱 더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예수의 부활을 두 눈으로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의 마지막 분부를 따라 예루살렘에 머무르며 성령을 받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더욱 더 확실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사도행전 전반부에는 주로 베드로의 설교와 행적에 대해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3장 11절부터는 예루살렘 솔로몬 행각에서 한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베드로의 솔로몬 행각 설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예루살렘 미문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성전 문에서 구걸을 합니다. 아마도 이 앉은뱅이는 예루살렘성을 찾은 사람들 중 미문을 지나갔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그 앉은뱅이!”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와 요한이 이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워버립니다. 심지어는 서서 뛰며 찬송하며 펄쩍 펄쩍 좋아합니다. 어느 누구도 의심할 여지 없이 바로 그 앉은뱅이입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들기 시작합니다. 엄청난 놀라운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붙잡혀 이끌려 솔로몬 행각으로 가게 되었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_행3:11

 

  베드로와 요한은 깜짝 놀라며 우리가 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지 말라고 소리 높입니다. 나는 단지 다시 살아나신 그 일에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 뿐임을 밝힙니다. “우리가 생명의 주를 죽였는데 그 분은 다시 살아나셨고 우리는 그 일에 증인이다.” 미문 앞 앉은뱅이는 장애라는 죽음에서 생명의 주가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두 발이 다시 회복되는 부활을 경험한 것입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_행3:15

 

  베드로와 요한이 한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고백한 이 말은 사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향해서 하셨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6-48절 말씀은 지난 번에 함께 살펴보았던 요한복음 20장 19-23절 말씀과 같은 배경이 되는 사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요한복음도 누가복음도 설명하는 방식이 조금 달라서 그렇지 강조하는 바가 같습니다. 증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말씀이 더욱 더 확실하게 살아가게 해 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_눅24:44

 

  주님의 부활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것과 함께 모세의 율법, 선지자의 글, 시편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이 부활하신 주님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구약의 말씀 깨달아지게 하심으로 너무도 확실한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직접 자신을 보이시고 구약성경으로 확실하게 보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에 증인이라” _눅24:48

 

  주님과의 첫사랑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말씀을 사모하며 읽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이 ‘이 모든 일에 증인’이 되는 순간입니다.

  증인이 된 베드로와 요한은 그 누구보다 겸손해지고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고 우리 각자에게 일어난 부활의 역사를 지켜볼 뿐입니다.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오직 죽음과 같았던 그의 삶이 육신이 회복되는 부활을 경험하고 무엇보다 가장 귀한 이 모든 일에 증인으로 세워집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 모든 일에 증인’으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시간에도 부활의 증인이 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늦은 시간 칼럼을 쓰면서 글쓰기의 어려움과 피곤함으로 죽음과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잠시 후면 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칼럼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칼럼을 마무리하면 피곤한 육체를 다시 회복 시켜줄 잠자리에 들게 됩니다. 일련의 이 과정이 ‘이 모든 일에 증인’으로 세워지는 순간입니다. 먼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저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한 이유는 우리 모두에게 너무도 가깝게 너무도 쉽게 ‘이 모든 일에 증인’으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함께 ‘이 모든 일의 증인’으로 살아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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