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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가정을 통해 이루시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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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교회 칼럼’ #123 _가정을 통해 이루시는 교회

 

2022년 5월 다섯째 주 칼럼(2022.5.1. ~ 2022.5.7.)

부활절 셋째 주일

 

사도행전 9:1-19

요한계시록 5:11-14

요한복음 21:1-19

 

 

 

우리는 “부활절 기쁨의 50일”의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5월의 첫 째날이며, 부활절 셋째 주일이면서, 어린이 주일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기에 가족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가족의 안식처라 할 수 있는 가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아끈공동체는 ‘집에 있는 교회’, 가정교회 공동체입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건물이나 신전이 아닌 오직 제자와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이 교회라는 것을 우리에게 너무도 명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은 바로 베드로 라는 사람이 교회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뜻이 반석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_마16:18

 

예수의 3년 공생애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바로 믿는 사람의 모임이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통을 따라 사도들은 건물이나 신전을 짓지 않고 가정에서 모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설교에 3천명, 5천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됐을 때도 어느 한 건물에 모두 모인 것이 아니라 흩어져 서너 가정이 집에서 모여 떡을 떼며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때 사도는 각 가정교회마다 순회하였습니다.

이 모습이 교회의 원안이요 원형입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교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러한 교회의 원형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함을 또한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사회에 더 많은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예수께서 세우셨던 원형의 모습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한 건물 안에 모이는 것이 어렵게 될 때 답은 3-4 가정별로 흩어져서 모이는 것이 답이었습니다.

앞으로 코로나와 같은 바이러스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입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번 코로나로 인해 얻은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니 이번 코로나를 반면 교사로 삼아 흩어져서 가정별로 교회를 이루는 것을 조직하고 만들어보는 것도 기존전통교회에게는 큰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가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 건물 안에 굳이 다 모여서 예배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돌아와서 가정은 곧 교회가 됩니다. 5월 가정의 달,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 각 가정이 교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끈공동체가 각 가정별로 돌아가며 함께 모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바울사도는 각 지역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가정에 모여 모임과 함께 예수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가정은 곧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사도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건물을 준비하고 신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건물을 준비했더라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질 수 없었겠죠. 바울은 오로지 사람을 세우고 그 가정이 교회가 되게 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종교의 혁명을 일으키십니다. 모든 종교는 신전 중심이지만 자신을 따르는 무리는 어떤 신전도 건물도 짓지 않고 오로지 사람 중심으로 모이셨습니다. 혁명입니다. 이 땅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건물로 돌아가는 것은 다시 종교화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종교화 되기 시작합니다. 건물 중심으로 모이고, 건물 중심으로 봉사하고, 건물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건물을 유지하고 성직자를 위한 것들이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것처럼 종교화됩니다. 따져보면 사실 하나님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관심을 가지셨던 것은 오롯이 사람이었습니다. 행사, 건물, 프로그램이 아니였습니다. 오롯이 가난한 자, 병든 자, 갇힌 자, 소외된 자, 지친 자 모두 사람 중심이었습니다.

 

아끈공동체는 예수께서 이 땅에 이루시기 원했던 바로 그 교회의 원형을 회복해 가는 것에 온 정성을 쏟을 것입니다.

 

가정의 달이니 교회학교에 대한 부분도 잠시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학교는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때 영국에서부터 시작된 운동 중 하나였습니다. 일터에 나가 일하는 바쁜 부모들로부터 무관심 속에 자라나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교회학교가 세워지면서 자녀의 신앙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녀의 신앙교육의 원안이 교회학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자녀의 신앙교육은 오롯이 가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신앙으로 양육하고 자녀들은 부모의 본을 따라 신앙인으로 자라났습니다. 그렇기에 사실 교회에 교회학교는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에서 모일 때 부모와 자녀가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모여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가장 자연스럽게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이 교회요 온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일 수 있는 곳입니다. 가면을 쓰고 잠깐 예배 시간에 참석하는 그런 모습이 아닌 모든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서로 보고 배울 수 있는 가정이야말로 자녀들을 신앙으로 교육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가정의 달! 우리는 다시 한 번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정이 교회이고 가정이 자녀의 신앙교육의 장이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_행9:17-18

 

바울사도에게는 눈에 비늘 같은 것 하나가 가려져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했습니다. 비늘이 씌워져 있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원안, 진리가 분명 앞에 있지만 깨닫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아니 저도 그러했습니다. 목사이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눈에 비늘이 벗겨지니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원형의 모습을 보고 따라가니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눈에 비늘이 씌워져 있으면, 교회의 원형인 가정교회를 보지 못합니다. 눈에 비늘이 씌워져 있으면, 교회학교가 아닌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의 회복이 있는 가정교회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는 원형과 원안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하는 비늘이 벗겨져 교회의 원형, 교회학교의 원형을 모두 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정! 가정이 온전히 회복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정이 교회가 되는 날이 오기를...

가정이 학교가 되는 날이 오기를...

가정이 신앙교육의 장이 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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