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25 _다시 새롭게
2022년 5월 셋째 주 칼럼(2022.5.15. ~ 2022.5.21.)
부활절 다섯째 주일
사도행전 11:1-18
요한계시록 21:1-8
요한복음 13:31-35
사도행전 11장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장입니다. 베드로의 선교보고와 최초 이방 교회인 안디옥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 곳이 사도행전 11장입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_행11:1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_행11:19
사도행전 11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이 일이 초대교회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에게는 큰 이슈 중에 하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유대인이었기에 유대인들에게는 강한 선민사상이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예수의 제자들인 사도들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사도들도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도 모두 예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 이방인들에게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가르치시고 병을 고치셨던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선민사상이 이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뜨겁고 열정적인 믿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깨닫는 순간을 잘 포착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을 잘 찾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환상 가운데 고넬료를 찾아가게 하셨고 예루살렘 교회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베드로를 통해 이 일을 이루십니다. 이 때 베드로는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 사도들과 성도들 앞에서 선교보고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 너무 당연한 것을 보고까지 하나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 민족, 유대인으로써의 강한 선민 사상이 오히려 복음을 막고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우리도 이 점을 항상 잘 생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우리로 복음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들도 이를 깨닫지 못했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도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비로소 고넬료의 가정에 일어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베드로를 통해 들으면서 이러한 잘못된 고정관념이 깨지게 됩니다.
사실 이방인에게 복음이 들어간 것은 이미 예수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정작 유대인들 본인들만 모르고 있었고 아니 외면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이죠.
오랫동안 몸에 베어 있고 그런 환경 가운데 살아가면 사실 그 틀을 깨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성령의 강력한 인도하심으로 깨닫고 그 틀에서 벗어날 때 가능해 집니다.
성경은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외칩니다. 이 말씀이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다른 어떤 사족을 부칠 필요가 없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_요13:34-35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따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예수께서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인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계속해서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무조건 복종하고, 무조건 다 주고, 무조건 다 받아들이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니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 상황과 시기와 때를 따라 기도하면서 잘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나라를 가장 쉽게 누리는 방법은 미워할 때가 아니라 사랑할 때일 것입니다.
‘새 하늘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천국, 하나님 나라를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고 설명한 표현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_계21:1-2
요한의 글에서 하나님 나라가 장소의 개념도 있지만 어떤 관념의 개념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천국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합니다. 원래 있던 것들이 전혀 새로운 것들이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도 예전부터 있던 것임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니 새 계명이 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리 하시고” _계21:5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이 말씀에도 앞에서 말한 관념적 개념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은 그대로인데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니 모든 만물이 새롭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이 천국입니까? 지옥입니까? 고통과 눈물로 가득한 곳입니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입니까?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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