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26 _천국에 성전이 없다
2022년 5월 넷째 주 칼럼(2022.5.22. ~ 2022.5.28.)
부활절 여섯째 주일
사도행전 16:6-15
요한계시록 21:10,22-22:5
요한복음 14:23-29
사도행전 16장은 바울의 2차선교여행 중 일어난 일을 기록합니다. 특별히 사도행전 16장은 기독교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계속해서 아시아 지역을 돌아보며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영“이 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드로아에 이르러서 밤에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보고 마게도냐로 넘어가기로 결심하고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넘어가게 됩니다.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_행16:7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로 마게도냐 지역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빌립보’에 몇 일을 머무르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 11-15절은 빌립보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빌립보에 도착한 바울은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다가 모여있는 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여자들 중에 ‘루디아’가 크게 감명을 받고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유하기를 청하고 루디아의 집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_행16:15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지고 이방인을 중심으로 한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고 안디옥교회에서 파송한 바울과 바나바가 가는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곳곳에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사람 중심의 가정이 교회가 되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루디아의 집에 가정교회가 세워지고 빌립보교회가 됩니다. 바울이 루디아를 처음 만날 때 여자들의 모임 중에 루디아를 만나는 장면에서 여인들의 역할이 큰 교회가 빌립보 교회가 아니였을까 유추해 볼 수 있는데 빌립보서에서 그러한 흔적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 두 여인에게 화해하고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_빌4:2
바울은 선교 여행 중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습니다. 마게도냐로 넘어갈 때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했습니다. 빌립보에 도착해서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앞으로 오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행하실 일들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바울의 선교여행 중에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성령의 일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그대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_행16:7
우리가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성령께서 우리로 생각나게 하셔서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여인들의 무리와 함께 대화를 나눌 때도 성령께서 말할 것을 생각나게 하셔서 말하게 하셨습니다. 루디아의 가정에 시작한 빌립보교회는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주목할 만한 말씀을 한 곳 보게 됩니다. 요한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크고 높은 산’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게 됩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_계21:10
요한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 천국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됩니다. 성곽과 문, 성은 보이는데 그 안에 성전이나 교회가 보이지 않습니다.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_계21:22
천국에 건물로 된 성전이나 교회의 모습은 없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도 명확하고 분명해집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닌 사람 중심의 가정이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입니다.
모든 시대에 시대적 소명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참 재미있게도 초대교회는 가정교회였고 그럼에도 기존의 신전중심의 종교로부터 사람 중심의 교회를 세우는 시대적 소명이 있었습니다. 콘스탄틴 황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부터 건물 중심이 된 교회로부터 사람 중심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건물 중심의 교회를 생각하고 그것이 교회인 줄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사람 중심의 가정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이 땅에 교회를 세워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복잡하고 세우기 어려운 사람이 만들려고 하는 교회가 아닌 성령의 감동을 받고 마음을 여는 사람을 중심으로 어렵지 않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정에서 교회를 세우게 하십니다.
얼마나 많은 교회가 건물인 교회를 세우고 그로 인해 힘겨워하고 그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넘어가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교회의 원형을 따라가는 것이 이 시대적 소명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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