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37 _믿음으로 아브라함은
2022년 8월 첫째 주 칼럼(2022.8.7. ~ 2022.8.13.)
성령강림절 후 아홉째 주일
창세기 15:1-6
히브리서 11:1-3,8-16
누가복음 12:32-40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의 믿음의 여정을 쭉 한 명씩, 한 명씩 보여줍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믿음으로 에녹은”,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믿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_히11:3
이 믿음의 선조들 중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믿음의 선조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 불립니다. 어떻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려지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다시 듣고 보고 생각해 보아야 할 장면입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다시 갱신하며 횃불언약을 맺는 장면이 기록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시 언약을 갱신하시며 횃불언약을 하신 이유는 이 한 구절에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_히11:6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나타나시어 횃불을 일으키시고 다시 언약을 맺으십니다. 참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믿음의 언약을 계속해서 세워가심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이 믿음에 대해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_히11:8
하나님의 부르심을 처음 받았던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지만 고향과 친척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보인 놀라운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아는 것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고향 집을 떠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과 함께 가는 곳이 ‘본향’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본향’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곳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임을 계속해서 누리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보이지 않는 것을 쫓아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쫓아가야 합니다. 본향, 하나님 나라는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쫓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한 발자욱도 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걸아간 길은 모두 보이지 않는 길이었고, 그저 기도하며 바라는 것들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결같이 믿음의 선조들의 공통점은 본향을 찾는 자로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찾는 자들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찾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_눅12:31-32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찾고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며 염려와 근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와 근심으로 가진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데 사용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_눅12:33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러한 본향, 하나님 나라를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조상이라는 엄청난 칭호를 받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할 일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살아가신 삶이 바로 이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이셨습니다. 예수의 삶을 봐 보십시오. 전체의 삶이 구제의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위에 억눌리고 곤핍하고 눌려있는 사람을 찾고 그들을 구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구제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것! 정성을 나누는 것! 사랑을 나누는 것! 감사를 나누는 것! 가진 것을 나누는 것! 미소를 나누는 것! 손을 나누는 것! 함께 걸어가는 것!
구제의 사전적 뜻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줌”입니다.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함께 만들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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