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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살기위해 생명을 택하고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41 _살기 위해 생명을 택하고

 

2022년 9월 첫째 주 칼럼(2022.9.4. ~ 2022.9.10.)

성령강림절 후 열셋째 주일

 

신명기 30:15-20

빌레몬서 1:1-21

누가복음 14:25-33

 

 

 

 

바울서신은 모두 13권입니다. 그 중에 한 장으로 된 책이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서신 중 로마1차투옥 중에 쓴 책이 네 권이 있는데 우리는 이를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이렇게 네 권이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특히 그 당시 노예제도 하에 있는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 ‘빌레몬서’입니다.

오늘은 함께 빌레몬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_몬1:9-10

 

바울이 로마 1차 투옥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는 자택감금의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큰 제약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다른 교회의 소식들을 들을 수 있었고 이러한 소식을 듣고 각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노예제도가 너무도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노예는 집 안에 하나의 물건처럼 여겨졌고 하나의 재산정도로 여겨졌습니다. 물건을 사고 팔 듯 노예도 사고파는 물건처럼 여겼습니다.

노예 중에는 주인에게서 도망친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오네시모는 주인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나옵니다. 로마에 도착한 오네시모는 바울 일행을 만나게 되었고, 바울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고 사람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의 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복음을 전하는 과저에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빌레몬의 종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빌레몬서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있는데 그 중 특히 아킵보,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의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_골1:7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_골4:17

 

골로새교회는 빌레몬과 아킵보, 에바브라 가정이 모이는 가정교회였습니다. 당시 한 가장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의 가정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이들, 노예도 포함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의 가정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네시모도 비록 빌레몬의 노예이지만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데 함께 하였을 것입니다. 분명 오네시모는 바울사도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었고 빌레몬에게서 도망쳐 나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바울사도를 만나게 된 것은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바울사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바울사도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동역자가 된 오네시모는 바울사도가 쓴 편지를 들고 자신의 주인 빌레몬에게 돌아갑니다.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역사는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_눅14:27

 

누가복음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세한 예화와 함께 설명해 줍니다.

첫 번째 예화는 망대를 세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는 전쟁에 나가는 임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 예화는 모두 잘 계산하고 잘 헤아려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대를 세우지 못하고 전쟁에서 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_눅14:28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_눅14:31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_눅14:33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이와 같이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비용을 계산하고 전쟁의 군사력을 헤아리는 것과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이 상반되게 들립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잘 계산하고 잘 헤아려서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내 소유를 최대한 버려내야지 생각만 하지 망대를 세우기 위해 비용을 계산하고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군사력을 헤아리는 것처럼 모든 소유를 비워내지 못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냥 주목구구식으로 내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면 되겠지 그런 것이 아니라 철저한 계산과 헤아림으로 나의 소유를 버려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나의 소유를 버리는 본질적인 이유는 버리지 못하는 소유는 모두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아닌 나의 소유가 신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 _신30:17-18

 

우리는 철저히 계산해서 나의 것을 버려야 하고 철저히 헤아려서 나의 소유를 버려내야 합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정도 이러한 철저한 계산과 헤아림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나의 소유와 재산의 가치로 여겨지는 노예, 오네시모를 계산하고 헤아려서 하나님께 내어놓습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헤아린다는 것은 지금도 앞으로도 우리가 버려야할 우리의 소유가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철저하게 계산하고 헤아리는 것이 더 많아지고 더 많이 내려놓게 될 때에 우리는 사망과 저주가 아닌 생명과 복을 선택하는 믿음의 사람들고 세워집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_신30: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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