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42 _잃어버린 자
2022년 9월 둘째 주 칼럼(2022.9.11. ~ 2022.9.17.)
성령강림절 후 열넷째 주일
출애굽기 32:7-14
디모데전서 1:12-17
누가복음 15:1-10
누가복음 15장은 편집자 누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보이는 말씀입니다. 비유 중에서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예수의 비유만을 모아 놓았기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아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잃어버린 자”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_눅15:1-2
누가복음 15장 잃어버린 비유에 대한 말씀을 하시게 된 계기가 1-2절에 기록됩니다. 예수께 가까이 나오는 이들 중에 세리와 죄인들이 많았습니다. 이 기준도 사실은 종교인들이 설정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이것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고 수군거리며 비난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세리와 죄인들’과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주목하며 시작합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유 말씀을 하실 때 분명 예수께서는 이들 모두를 주목해서 보셨습니다. 이들은 모두 ‘잃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두 그룹의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자’임을 다시 상기시켜줍니다. “세리와 죄인들처럼 너희도 잃어버린 자였다는 것을 기억해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잃어버린 자가 된 것을 기억해라”
우리는 ‘잃어버린 자’였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언제든지 믿음을 져버리고 ‘잃어버린 자’로 다시 돌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10재앙을 통해 애굽 노예생활에서 탈출해서 나왔습니다. 홍해에서는 바다를 가르시며 애굽 전차군대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을 직접 눈으로 목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고 경험합니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광야에서 매일 불기둥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 줍니다. 애굽에서의 노예였을 때는 ‘세리와 죄인들’과 같이 ‘잃어버린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얼마가지 않아 다시 잃어버린 자가 되고 맙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가 됩니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_출32:4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다시 잃어버린 자가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가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삶을 돌아보아도 쉽게 발견합니다. 우리는 왜 이리도 쉽게 순간 순간 하나님을 잃어버리는지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같이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폭력적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_딤전1:13
비방자가 되고, 박해자가 되고, 폭행자와 같이 잃어버린 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것을 믿지 않았을 때였다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잃어버린 자’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엿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자가 나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이렇기 기억할 때에 바울사도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말 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자는 별 볼일 없는 사람입니다. 언제든 다시 배신하고 다시 잃어버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하찮고, ‘나’라는 사람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인식하고 고백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 다시 잃어버린 자가 되지 않기 위한 최고의 방법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잃어버린 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보니 더 폭력적이 되고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잃어버린 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계속해서 겸손하게 잃어버린 자임을 잊어버리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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