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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믿음을 더하소서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45 _믿음을 더하소서

 

2022년 10월 첫째 주 칼럼(2022.10.2. ~ 2022.10.8.)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

 

하박국 1:1-4, 2:1-4

디모데후서 1:1-14

누가복음 17:5-10

 

 

여러분은 ‘믿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각자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울사도가 말하는 믿음과 이 믿음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구약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을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_롬1:17

 

바울사도는 로마서를 통해 율법과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이신칭의’에 대해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바울사도가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이신칭의에 대한 설명으로 ‘믿음’을 말할 때 하박국 2장 4절의 말씀을 가져옵니다. 바울사도가 생각하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박국 2장 4절에서 ‘믿음’으로 해석한 단어가 무엇이고 히브리어의 어떤 단어를 바울이 ‘믿음’이라고 번역하고 해석하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_합2:4(개역개정)

 

“멋대로 설치지 말아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_합2:4(공동번역)

 

바울이 믿음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에무나토”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원형은 ‘에메트“입니다. 이 단어는 참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의미는 진리에 대한 부분을 설명할 때입니다. 하박국에서 ’에무나토‘는 ’진실한, 신실한, 성실한‘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단어는 ’의인‘입니다. 구약에서 의인은 율법과 행위를 잘 지키는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의로움을 이야기할 때 사용합니다. 바울사도는 새로운 개념을 가져와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에서부터 설명하고 이야기 되어져 온 것을 다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된 사람은 신실하게, 진실하게, 성실하게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에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생각한 믿음은 율법을 잘 지키고,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고 우리에게 구원받는 방법을 알려주신 방법을 따라 성실하게 잘 이행하며 살아가는 자가 믿음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두 주간 ”가난한 자 vs 부유한 자“에 대해 나눴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유한 자입니다. 참 부유한 자는 가난한 자와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이것이 우리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있는 삶이란 성실하게, 진실함과 신실함을 담아 작은 예수인 가난한 자들을 찾아 그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구원의 조건으로 예배, 주일성수, 봉사, 선교 이러한 것이 마치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를 구원케 하는 증거가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시각과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누가 기도를 더 잘하느냐, 누가 주일성수를 잘 하느냐, 누가 봉사를 많이 하느냐, 누가 교회건물 안에 오래머무느냐, 누가 전도를 많이 하느냐“로 그 사람의 믿음이 있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작은 자와 함께 있었느냐, 누가 가난한 자를 더 살폈느냐, 누가 더 갇힌 자를 돌봤느냐, 누가 더 아픈 자를 더 돌어보았느냐, 누가 억눌린 자의 억눌림을 풀어주었느냐“로 서로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5절에는 예수께 제자들이 부탁합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_눅17:5

 

제자들은 믿음을 더해달라고 예수께 부탁합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은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으면 되는거야. 라고 답하십니다. 그러면서 태산도 옮길 수 있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에 대한 비유의 말씀으로 “무익한 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종은 하루 종일 밭 갈고, 양 치고, 돌아와서는 쉬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먹을 것을 준비하고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 수종 들고 나서야 후에 먹고 마십니다. 그렇다고 주인이 종에게 감사하다고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종은 너무도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답합니다.

 

믿음을 더 해 달라는 요청에 예수께서는 나를 무익한 종이라 여기며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뽕나무도 옮기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허상을 쫓아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예수께 믿음을 더 해 달라고 요구하는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가 믿음 있는 사람들로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믿음은 진실하게 성실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삶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 갇힌 자, 연약한 자와 함께 나누며 살아가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주변을 돌아보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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