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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하나님 나라의 시작, '임마누엘'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56 _하나님 나라의 시작, ‘임마누엘’

2022년 12월 셋째 주 칼럼(2022.12.18. ~ 2022.12.24.)

대림절 넷째 주일

 

이사야 7:10-16

로마서 1:1-7

마태복음 1:18-25

 

 

 

2023년 대림절 넷째 주입니다. 첫째 주 ‘빛’, 둘째 주 ‘소망’, 셋째 주는 ‘기다림, 인내와 오래참음’가 주제였습니다. 넷째 주의 주제는 ‘함께하심’입니다. 이사야를 통해 ‘임마누엘’로 임하실 메시야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_사7:14

 

오늘 마태복음의 말씀, 18절에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예수님께서 어떻게 태어나시는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님,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이루신 분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한 이야기,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곳이 어떤 곳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이야기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실까요!

 

젊은 청년 요셉과 아리따운 소녀 마리아는 나사렛의 작은 동네에서 함께 살면서 정을 키워왔습니다. 젊은청년 요셉은 그 지역에서 목수로 정말 열심히 하루 하루 살아가는 성실한 청년입니다. 아라따운 소녀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부유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집안 일을 도우며 착하게 살아온 아리따운 소녀입니다.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약혼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마리아가 요셉을 대하는 태도가 이상합니다. 그리고 요셉을 점점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요셉은 왜 마리아가 자신을 멀리하는 것일까? 의아해합니다. 그러던 중 요셉은 마리아가 왜 자신을 멀리하고 태도가 이상해졌는지 알게 됩니다. 세상에 마리아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 사실을 알고 분이 치밀어 오릅니다. 요셉은 이 배신감과 말도 안 되는 이런 상황 가운데 미칠 것만 같습니다. 분해서 당장이라고 파혼을 선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당장이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19절에 보면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의로운 사람, 요셉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자신이 사랑하는 마리아가 당시의 정결법에 따라 돌에 맞아 죽게 되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배신감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알리고 싶지만 죽게 될 마리아를 생각하면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만히 끊기로 결심합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_마1:19

 

누구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는 가운데 결국 파혼을 결정한 바로 그날 밤, 꿈 속에 주의 사자,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요셉에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합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_마1:20-21

 

그리고 이사야 7장 14절 말씀을 하시면서 바로 이 말씀을 이루려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주의 사자는 구약의 말씀까지 언급하면서 요셉에게 설명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_마1:23

 

이 말씀은 아하스 왕 때에 이사야를 통해서 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의 사자는 마리아를 통해서 오실 분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름을 하나 더 말씀합니다. “임마누엘”입니다. 낳을 아들의 이름이 둘이 된 것입니다. ‘예수’, ‘임마누엘’

이 두 이름의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예수’는 21절에 그 이름의 의미가 기록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다음은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무엇입니까? 23절에 이름의 뜻을 설명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이름으로 마리아를 통해서 낳을 아이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이사야 7장 14절에 기록하면서 메시야의 또 다른 이름을 말씀하신데에는 요셉을 향한 분명한 메시지가 있어서입니다.

요셉에게 주신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하신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예언하게 된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할 때 요셉에게 주시는 이 이사야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7장 14절의 배경이 된 상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당시는 남유다 왕 아하스시대가 배경입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서 지내오다가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하기 전의 상황입니다.

도시국가로 시작했던 앗수르(앗시리아)가 엄청나게 급성장하면서 제국이 됩니다. 그리고 중근동 지역을 모두 정복합니다. 그러면서 애굽까지 영토를 확장하려고 내려옵니다. 그러다보니 애굽사이에 있는 모든 나라들은 앗수르 공격의 대상이 됩니다. 이러한 제국 앗수르의 팽창 앞에 너무도 급박해진 북이스라엘 왕베가와 아람 왕 르신은 함께 손을 잡고 앗수르와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동맹을 맺습니다. 그런데 남유다는 이 동맹에서 빠져버립니다. 하나라도 더 힘을 합쳐야 할 판에 남유다 왕 아하스의 생각은 달랐던 것입니다. 오히려 앗수르의 편에 서서 안전하게 가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북이스라엘과 아람은 앗수르와 남유다 사이에 끼어서 더 위험해지는 상황이 될게 뻔했습니다. 남유다 왕 아하스의 생각을 알게 된 베가와 르신은 앗수르가 내려오기 전에 남유다를 먼저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 베가와 아람 왕 르신은 힘을 합쳐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_사7:1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동맹을 맺어서 공격을 할 때 아하스의 마음은 이러했습니다. 2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남유다 왕 아하스와 백성들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람(다메섹)의 르신과 이스라엘의 베가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낙심하지 말아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일이 일어나게 된 근본인 앗수르를 의지하려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주시는 예언의 말씀이 바로 7장 14절 말씀입니다. “임마누엘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놀라운 은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네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나만 바라 보아라” 라고 아하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_사7:14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바라보아야 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될 것을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이사야 선지자의 놀라운 은혜의 예언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세상의 기준을 따라 강대국, 앗수르를 선택하고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는 길을 택하게 됩니다.

 

지금 요셉의 꿈 속에 나타난 주의 사자, 천사가 바로 이 말씀을 요셉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세상의 기준을 따라 아하스 왕이 이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강대국을 의지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강한 쪽을 의지하는 것이 자신도 살고, 남유다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요셉도 의로운 사람으로 자신이 생각한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도 살리면서 자신의 고통을 혼자 짊어집니다. 우리가 보아도 정말 현명한 선택입니다.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용히 끊음으로 죽을 수도 있는 마리아를 살리고 세상의 관례와 기준을 따라 정절을 지키고 자신의 분노는 가슴에 묻어두는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마리아를 자신의 아내로 받아드리는 것이고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이라고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요셉은 이사야 7장 14절의 상황처럼 아하스의 전철을 밟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세상이 좋게 생각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서 성령으로 잉태된 아이를 낳고 말씀을 따라 이름을 ‘예수’라 부르게 됩니다.

 

순종의 결과로 이제 요셉에게 ‘임마누엘’이 임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바로 요셉과 같은 순종이 있을 때 임하는 나라입니다.

요셉의 순종으로 이제 요셉 자신 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임마누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요셉의 순종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기 시작됩니다.

주의 사자를 통해서 예수라는 이름 외에 하나의 이름을 더 주신 의미가 이제 더욱 분명해집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자, 예수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아하스와 같이 자신의 생각과 세상의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자가 아니라 요셉과 같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뜻에 순종하며 나아감으로 여러분의 삶에 임마누엘의 은혜가,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게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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