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63 _기뻐하는 금식
2023년 2월 첫째 주 칼럼(2023.2.5. ~ 2022.2.11.)
주현절 후 다섯째 주일
이사야 58:1-9
고린도전서 2:1-12
마태복음 5:13-20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요, 신앙인이요,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이 되고 우리는 종교적 행위가 우리의 신앙의 기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종교적 행위를 우선하게 되고 그것이 마치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사야 58장은 종교적 행위 중 하나인 ‘금식’에 대해 말씀합니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_사58:6
금식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금식이 나의 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신앙의 수준을 과시하기 위해서, 종교적 행위를 채우기 위해서 행해지면 안됩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종교적 행위보다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는 일이 먼저라고 말입니다. 종교적 행위를 앞세우다보면 사람은 뒷전이 되고 행위 자체만이 우상처럼 여겨지게 됩니다. 이것은 ‘금식’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적 행위에도 해당 됩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연보, 금식, 교회행사 등 이러한 종교적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필요없는 것이냐?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배, 모임 등 종교적 행위는 필요합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종교적 행위가 사람보다 앞서게 될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고 이것만이 복음이요 생명임을 아는 사람은 그 은혜에 힘입어 종교적 행위를 하게 됩니다. 종교적 행위가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은혜를 나누고 혼자가 아닌 함께 나아가는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금식에 대한 당시의 일반적인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엎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의 줄을 끌러 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고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실제적인 삶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금식의 행위에 대해 7절에서 말씀합니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_사58:7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이런 금식의 행위는 놀랍게도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오른편에 선 양과 같은 이들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_마25:35-36
이러한 행위는 종교적 행위가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은 종교적 행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_삼상15:22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_마5:23-24
분명 말씀을 통해서 제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순종이고 이 순종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예배보다 먼저 앞서야 하는 것이 서로에게 불편한 것이 있고 잘못이 있을 때 대화를 나누며 화목하고 화해 해야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도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하나님 나라 법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_사58:8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위와 같은 성경에서 말하는 삶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면 팔복의 사람처럼 미련한 자와 같이 약한 자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임을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는 그 어떤 세상의 큰 지혜를 가진 자라도, 통치자들의 지혜도 감히 따라 갈 수 없고 이해하지 못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_고전2:6-7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처음 태어났고 모두 처음 살아보는 인생입니다. 그렇기에 그 어느 누구도 어떤 길이 맞는 길인지 장담하지 못하고 모두 자기 소견과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답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분이 안내해 주는 방식을 따라 살아가면 그것이 정답입니다. 이러저리 머리 쓰지 않아도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오늘 말씀이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에 있어서 그 중요한 원리를 알려줍니다. 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독려하고 이러한 삶에 대한 나눔과 간증을 통해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더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위와 같은 삶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말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모두 착한 행실이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착한 행실이었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_마:5:16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 종교적 행위가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인 착한 행실이 우리의 삶에 습관처럼 몸에 배어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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