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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십자가의 도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61 _십자가의 도

2023년 1월 넷째 주 칼럼(2023.1.22. ~ 2022.1.28.)

주현절 후 셋째 주일

 

이사야 9:1-4

고린도전서 1:10-18

마태복음 4:12-23

 

 

새 해가 시작되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최소한 세 번은 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교회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함을 듣습니다. 또한 1월 1일 한 해가 시작되기에 새 해 첫 날 새로운 한 해가 시작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구정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정보다는 구정을 설날 명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구정은 또 한 번의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이 됩니다.

거기에 교회력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은 또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1월 6일 주현절과 주님수세주일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하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_마4:13

 

예수께서는 40일 금식을 하시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이 때 중요한 삶의 변화 중 하나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나사렛 본인의 가정을 떠나 새롭게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에 위치한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가신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삶의 거처를 옮기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성경은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집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_사9:1

 

사실 역사적 보아도 갈릴리 지역은 전혀 주목받는 곳이 아니였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주목받는 곳은 수도에 해당되는 예루살렘이나 사마리아 그리고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지요지명이 주목받는 곳입니다. 거기에 유다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이스라엘의 북쪽보다는 남쪽이 더 주목받는 곳이고, 지정학적으로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과 여리고가 휠씬 더 중요한 곳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예수께서는 나사렛에서 자신의 거처를 예루살렘이나 그 주변 지역이 아닌 정반대편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갈릴리 주변 지역으로 거쳐를 옮기십니다.

 

나사렛과 갈릴리 호수 지역은 사실 그리 먼 곳이 아니라 사실 예수께서는 스불론과 납다리 지경을 벗아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예언의 말씀대로 삶을 살아가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 당시 분위기와 주도권은 예루살렘 주변부였음을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_요1:46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_요7:41

 

그 당시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로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인 갈릴리 지역은 천대받는 곳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다나엘도 오실 메시야가 나사렛에서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질문하며 의아해 합니다. 메시아가 갈릴리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세상의 일반적인 모습이요. 생각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반대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천대받고 멸시받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의 갈릴리를 선택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반문하며 성경을 말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합니다. 유다지역 예루살렘 지경에 위치한 베들레헴입니다. 예수께서 나실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질문합니다. 그런데 그 말도 사실입니다. 그 성경에 대한 예언도 예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단편적으로 한 부분만 놓고 보는 경우입니다.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그 사실을 모를 뿐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게 되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것도 맞고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을 선택하신 것도 맞습니다. 그렇기에 좀 더 정확하게 알고 만약 놓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들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논리와 성경적 삶의 원리는 서로 상충될 때가 많습니다. 위에서 예수의 삶의 흔적 속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을 성경은 ‘십자가의 도’라고 말합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을 선택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미련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_고전1:18

 

성격적 가르침을 따라 살아갈 때에 사람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게 보이기도 합니다. 때론 성경적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려고 힘쓰는데 어려움이 찾아오고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바울사도가 세웠던 가정교회 중 한 곳인 고린도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가장 먼저 두드러진 문제는 분파의 문제였습니다. 고린도가 큰 도시이고 인구가 많은 곳이다보니 고린도교회도 부흥을 경험하고 더 많은 가정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때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는지로 서로 분파가 생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에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 너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바울사도는 너무도 쉽게 이 문제에 답을 줍니다.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복음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_고전1:17

 

오늘은 설날! 온 가족이 함께 모이고 담소가 오가는 날입니다. 가정마다 어찌 문제 없는 가정이 있겠습니까! 그 문제 앞에 우리는 성경적 삶의 원리를 따라 바라보고 십자가의 도로 서로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이번 명절 ‘십자가의 도’로 서로에게 힘이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기분 좋은 명절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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