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64 _율법을 넘어
2023년 2월 둘째 주 칼럼(2023.2.12. ~ 2022.2.18.)
주현절 후 여섯째 주일
신명기 30:15-20
고린도전서 3:1-9
마태복음 5:21-37
신명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마지막 교훈들입니다. 신명기는 두 개의 구조를 가집니다. 첫 번째는 모세의 가르침으로 1-30장까지이고 두 번째는 모세의 마지막 유언으로 31-34장까지입니다. 첫 번째 모세의 가르침에는 세 개의 교훈의 말씀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교훈은 1-4장까지로 과거의 회상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5-26장으로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세 번째 교훈은 27-30장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땅 입성을 위한 교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_신30:15
신명기 30장은 모세의 교훈 중에서 마지막 가르침으로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생명, 복, 사망, 화는 우리 인생의 전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모세는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이고 그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_신30:16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라 합니다.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점은 우리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 시기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입니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예수의 시대를 지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율법에서는 “살인하지 말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한 차원 더 높은 살인의 개념을 말씀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_마5:21-22
예수께서는 살인이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주위 사람을 노하게 하거나 욕 하거나 하는 행위도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쉽게 말해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가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된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특히 마태복음 5장 21-48절까지는 모두 율법에 대한 말씀과 함께 예수께서 한 차원 높은 율법의 적용을 말씀합니다.
나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고 힘겨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예배 드리기 전에 먼저 화목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에 대한 생각보다 예배나 종교적 행위를 더 앞서서 하려고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은 육체적인 간음에 대한 부분이지만 예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간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율법은 또 어떻습니까? 이웃의 개념을 원수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 전에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말씀합니다. “ 네 원수를 사랑하라”
그렇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 차원 높은 고강도의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야하는 거 아니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세의 시대와는 분명 달라도 너무 다른 시대입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바울사도가 주는 교훈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일어난 문제 중에 하는 분파의 문제였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_고전1:12
고린도교회에 세례를 누구에게 받았느냐로 파가 나뉘어지기 시작합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서로 나뉘어졌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우리의 모임 속에서 일어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계속해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해결하지 않으면 공동체는 나눠지고 갈라지게 됩니다.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너무도 중요합니다. 바울사도는 동역자 의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서로 각자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역할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각자 그 역할에 맞게 사역을 한 것입니다. 누가 더 잘 했고, 누가 더 능력이 있고, 누가 더 나에게 맞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동역자 의식에 대한 개념은 리더 뿐만 아니라 공동체원들도 함께 생각하고 공유해 가야 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사도 자신이 한 일도 있고 아볼로가 한 일도 있고 각각 맡은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임을 바울사도는 강조합니다.
바울사도가 이야기하는 분파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해결하는 좋은 예시가 됩니다.
율법의 시대에는 율법의 문자적 의미를 따라 행해졌고 예수의 시대부터는 문자적 의미 뿐만 아니라 그 내면적 의미까지를 생각하고 적용하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을 넘어, 사람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셨던 예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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