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74 _부활의 열매, 교회
2023년 4월 넷째 주 칼럼(2023.4.23. ~ 2022.4.29.)
부활절 셋째 주일
사도행전 2:14,36-42
베드로전서 1:17-25
누가복음 24:13-35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들로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담력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를 믿고 따르던 수많은 제자들과 여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를 따르는 제자는 12명 뿐만 아니라 70명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눅10장) 그들 모두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수시로 나타나셔서 믿음 없는 그들에게 말씀으로 다시 깨우쳐 주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세우십니다. 그러한 대표적인 모습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입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_눅24:13-14
글로바(눅24:19)와 다른 한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입니다. 이들은 지난 새벽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길을 걸어갑니다. 둘 다 무덤에서 사라진 예수의 시체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에 예수께서 함께 걸어가며 이야기를 건네지만 이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아예 상상조차 못합니다. 그렇게 눈이 가리워져 부활하신 예수가 옆에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부활하신 예수를 믿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믿음 없는 두 제자에게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_눅24:27
구약의 말씀으로 예수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두 제자에게 다 설명하십니다. 얼마나 가슴 뜨거운 이야기일까요? 예수께서 구약의 말씀 친히 풀어서 설명해 주셨다니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었을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때까지도 이 두 제자는 옆에서 말씀을 설명하시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이신지를 모릅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떡을 떼어 음식을 나눌 때에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부활하신 예수이심을 알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만날 때 특징 중 하나는 제자들과 음식을 나누며 그들의 눈을 밝히셨다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도 음식을 나누시고, 열한 제자와 함께 만나셨을 때도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눅24:42-43), 고향 벳새다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도 함께 음식을 나누셨습니다.(요21:9-14)
예수와 함께 식사를 하며 떡을 뗄 때 부활하신 예수가 더욱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함께 주님의 이름으로 식사를 하고 나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은혜의 시간이 됩니다.
특히 예수께서 떡을 떼시며 음식을 나누실 때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알려주신 떡이 주님의 몸을 상징하고 잔이 주님의 피를 상징함을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과 함께 하는 식사시간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분부합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러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라”
열한 제자를 포함한 120명의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오순절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에게 충만하게 임합니다.
베드로는 성령충만함으로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과 사람들에게 나아가 자신이 경험한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강권합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_눅24:38
“모두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어찌보면 너무 무모한거 아니야 생각할 수 있지만 놀랍게 성령충만한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선포된 십자가와 부활의 이야기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은혜를 입히게 됩니다. 그때 무려 삼천이나 되는 사람이 신도가 됩니다. 장전만 삼천이니 남녀노소를 모두 합치면 만명이 넘는 숫자입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예루살렘 교회를 세워가게 됩니다. 여기서 “사도의 가르침”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사도의 가르침”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신 교회에 대한 가르침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_마16:18
제자들이 예수께 배운 교회는 건물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두세 사람에게 나도 그들 중에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_마18:20
마태복음 18장은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교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임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 가르침을 따라 예루살렘 교회를 세워갑니다.
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사도들은 두 세 가정이 집에서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모일 때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식사를 하시며 가르치셨던 것처럼 사도들이 집에서 함께 모일 때 떡을 때며 모임을 했습니다.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알려주셨고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식사하시며 다시 알려주습니다. 제자들은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떡을 떼는 시간은 성령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는 빼 놓을 수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장 회복해야 할 예배의 본연의 모습입니다. 종교적인 순서나 예식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떡을 떼며 함께 식사하는 자라가 중요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식사의 자리가 이러한 주님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떡을 떼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세 번은 주님과 함께 떡을 떼는 만찬의 자리가 됩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 오릅니다. 매 식사 시간이 주님과 함께 하는 만찬의 시간이라니!!
지금 우리는 “집에 있는 교회”, 가정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시작한 아끈공동체가 제주를 넘어 완도에 넘어왔고 완도에서 가장 먼 곳인 강원도 인제에 아끈공동체를 세우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제주의 로뎀교회도, 완도의 나눔교회도 모두 여전히 미완성이고 부족함이 많습니다. 강원도 인제에 세워질 교회도 미완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우리가 세워가는 교회가 아닌 주님께서 세워가시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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