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77 _소망의 이유를 답하는 교회
2023년 5월 둘째 주 칼럼(2023.5.14. ~ 2022.5.20.)
부활절 여섯째 주일
사도행전 17:22-31
베드로전서 3:13-22
요한복음 14:15-21
바울사도는 사도행전 15장에서 개최된 예루살렘 공회 후에 2차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안디옥(수리아) - 더베 – 루스드라 – 이고니온 – 안디옥(비두니아) - 드로아(무시아) - 네압볼리 – 빌립보 – 데살로니가 – 베뢰아 – 아덴 – 고린도 - 가이사랴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_행17:15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보다 아덴에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다른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바울은 아덴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_행17:18
그리고 에피쿠로스 철학자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을 하게 됩니다.
못 보던 외국인이 아덴에서 유명한 철학자들과 쟁론을 펼치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아덴의 재판장인 아레오바고에 세워 그를 심문하기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아레오바고는 아덴의 종교 도덕에 관한 문제를 강론하고 재판하던 장소였습니다. 아덴사람들이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붙들어 간 것은 아덴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종교인 문제에 대해 함께 쟁론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생각하고 섬기던 신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좀 더 들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_행17:19
하나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이루어가실 때가 많습니다. 지금 바울도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 자기에게 일어납니다. 애써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것도 아덴의 최고 재판 장소인 아레오바고에서 자신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덴사람들의 요청으로 강론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아레오바고에서 선포한 바울의 강론은 아덴사람들에게 큰 충격과 함께 아덴교회가 세워지는 발판이 됩니다. 아덴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신들을 섬기는지 세상에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까지 제단을 쌓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이 신들의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신들의 분노를 미리 막으려는 의도였습니다. 종교심으로 가득 찬 아덴사람들이지만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얼마나 큰 짐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들은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이 아덴 아레오바고에서 한 강론은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습니다. 아덴 거리를 둘러보고 그 지역의 특징을 파악하고 전도의 접촉점을 발견하고 아덴사람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습니다. 그러니 아덴 사람들의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놀라운 말들은 과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우리를 이끌어가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게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_요14:16
시시때때로 은혜와 감동을 받고 하루 하루 살아갈 힘을 얻고 살아가게 되는 것은 모두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이끌어가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이 말씀이 왜 이렇게 큰 울림으로 가슴을 울리게 하는지!
오늘도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기에 다시 용기와 힘을 얻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_요14:18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기에 우리는 더 이상 고아와 같이 버려진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더 충만한 감동과 감격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혼자 있는 것과 모르고 혼자 있는 것은 정말 너무도 큰 차이입니다. 성령의 내주하심을 인식하고 기도하며 지내는 시간은 참으로 귀한 시간이 됩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_요14:19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이시기에 우리로 세상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것들을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해 주십니다. 아레오바고에서 바울사도가 아덴사람들에게 했던 말들이 그들에게 새로운 가르침으로 들렸던 것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바울의 입술을 통해 말하게 하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아덴은 그리스에서 최고의 철학자들이 모여서 서로 쟁론하고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아레오바고에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강론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런 유명하고 아무나 설 수 없는 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담대하게 아덴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역사이기에 가능했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아덴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말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울이 준비가 되어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세웠습니다. 가멜리엘 수하에서 율법을 배웠고 소아시아 다소에서 태어났기에 헬라인들과 접촉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바울의 삶은 열정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도 그러했고 그러한 바울의 열정적 삶은 예수를 안 후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_벧전3:15-16
이러한 삶의 자세에 대해 베드로도 동일하게 이야기합니다. 베드로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열정적 삶으로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아 준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베드로도 항상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준비할 때의 마음가짐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온유, 두려움, 선한양심으로 준비해야 함을 말합니다.
앞으로 삶을 살아갈 때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때를 위해 우리는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끈공동체는 ‘집에 있는 교회’를 세우며 교회의 본질을 찾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교회에 대한 소망을 묻는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만남 속에서 저를 통해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깨닫게 된 교회와 이를 위해 준비해 왔던 것들이 빛을 발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물음에 답하고 그들에게 안내할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그 세우신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교회가 소망입니다. 소망인 교회가 예수께서 세우시기 원하셨던 교회의 모습을 회복하고 되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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