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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삼위일체 원리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80 _삼위일체 원리

2023년 6월 첫째 주 칼럼(2023.6.4. ~ 2022.6.10.)

삼위일체주일

 

창세기 1:1-2:3

고린도후서 13:11-13

마태복음 28:16-20

 

 

보통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며 하는 축복의 원형은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바울의 축도를 따릅니다. 바울이 기록한 이 축도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을 축약해서 잘 설명해 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_고후13:13

 

이번에는 바울의 축도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통하심”을 각각 생각하는 시간이 가지고 이를 우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천지창조의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심으로 모든 것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천지창조를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이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향해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시며 흡족 해 하셨습니다.

 

천지창조는 일주일 동안 진행됩니다.

첫째날 빛, 둘째날 궁창, 셋째날 땅, 넷째날 해와 달, 다섯째날 새와 물고기, 여섯째날 동물과 사람, 일곱째날 안식

이러한 순서로 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창조의 순서에 특별한 3중구조를 이룹니다.

 

첫째날 빛 -> 넷째날 해와 달

둘째날 궁창 -> 다섯째날 새와 물고기

셋째날 땅 -> 여섯째날 동물 사람

 

셋째 날까지는 땅의 기초를 만드시고 넷째 날부터 그것을 주관하는 것을 만드셨습니다. 그저 무질서하게 이루어진게 아니고 일정한 규칙과 순서를 가지고 만드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더 많은 신경을 써서 이루셨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더 세심하고 신경을 쓰게 되고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천지창조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_1:18-20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만든 피조세계를 무한 사랑하셨습니다. 피조세계가 파괴되고 망가지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하시고 이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사랑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이 만든 피조세계에 사람의 형상을 입고 자신이 직접 내려오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놀라운 사랑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사람 뿐만 아니라 피조세계에도 화평과 화목을 이루어 주셨습니다.(골1:16-20) 그리고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해 주셨고, 진리를 가르쳐주셨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땅에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시기 위해 자신이 직접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 던지셨습니다. 또한 이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자신을 믿게 되면 누리게 될 더 놀라운 은혜를 보여주셨습니다. 회복의 끝판왕! 죽은 자의 부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떤 좌절과 절망과 죽음과 같은 상황도 다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그저 놀라운 은혜입니다. 승천하시기 전, 끝까지 자기 사람들을 챙기시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떠남으로 모두에게 임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세 번째 “성령의 교통하심”입니다. 여기서 좀 어려운 말이 “교통하심”입니다. 교통하심의 헬라어는 ‘코아노니아’입니다. 해석하면 ‘교제, 친교, 참여, 나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셔서 먼저를 나 자신과 교제와 친교를 이룹니다. 여기서 우리는 잘 못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의 임재가 어떤 예배의 순간이나 어떤 장소에 가야만 이루어지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는 순간 성령은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그때부터 쭉 우리 안에 임재하시며 우리와 동행합니다. 이것이 은사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과 교제와 친교가 풍성해지면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것처럼(요7:38) 흘려 넘처 이웃에게로 흘러갑니다. 자신의 은사를 발휘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는 실제 삶에서 더욱 풍성함을 더해주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도 삼위일체 원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의견과 자녀의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삼위일체 원리가 빛을 발합니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겁니다. 부모, 자녀, 하나님 이렇게 삼위일체 원리를 따르게 되면 서로의 의견이 반영되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되니 서로 화목과 화평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삼위일체 원리는 일터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느 곳이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서로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삼위일체 원리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의견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원리입니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점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너무 급하게 모든 일을 결정하려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물론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다를 때 삼위일체 원리를 따라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릴 때 분명 하나님께서 화평과 화목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삼위일체 원리를 따라 화평과 화목을 이루는 삶을 살기도 다짐하는 우리 모두에게 충만히 임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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