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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하나님의 일꾼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34 _하나님의 일꾼

2024년 7월 첫째 주 칼럼(2024.7.7. ~ 2024.7.13.)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

 

에스겔 2:1-5

고린도후서 12:2-10

마가복음 6:7-13

 

 

하나님께서 사람을 택정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인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다. 성령이 임하는 성전이 되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주셔서 주신 은사를 따라 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모두가 하나님의 일꾼이 된다.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_벧전2:9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꾼의 3가지 특징을 알아보려 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에스겔이지만 그를 불러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씀 해 주신다. 주신 은사를 통해, 마음의 감동을 통해 각자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알게 하신다.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으로 포로로 끌려와 절망과 좌절에 빠져 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세우시고 백성들에게 그들의 죄악을 선포하게 하신다.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엡1:18) 마음의 눈이 밝혀 질때에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_겔2:5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복음 전파자로 세우신다. 예수께서 열두 명의 제자를 뽑으시고 훈련시키신 후에 둘씩 짝을 지어 천국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더 놀라운 것은 아무 능력도 없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능격을 주시고 나가서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치유하셨던 것처럼 제자들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에게 기름을 말라 고치게 하셨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제자들에게 능력이 있어서 그런 일을 한게 하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하게 하셨다. 양식, 배낭, 돈, 옷 등 가지지 말라 명하신다. 우리가 이 땅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갈 때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복음을 전할 때 또 한 가지 주의사항은 복음을 받아들인 집이 있다면 되도록 한 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왜 예수께서는 한 곳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까?

복음을 받아들이는 집집마다 머물면서 더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하면 됐을텐데 그렇게 하지 말라 하신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가름해서 생각해 본다면 처음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짐작해 본다. 어느 곳을 가든 첫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주셔서 그들도 하나님의 일꾼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일꾼을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주신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왕상17:8-24)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지자를 선대한 사르밧 과부를 하나님께서 크게 축복하셨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 받아들인 자들의 선대를 우리는 반드시 받아들이고 그들을 축복해야 한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2)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_막6:8-10

 

셋째,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는 각자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세 번째 특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약점과 연약함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과 그리스도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각자 가지고 있는 연약함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연약함을 부끄러워해서 계속해서 능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한다. 반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연약함을 자랑하고 다 내어놓을 수 있다.

바울사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체의 가시가 있다. 어쩌면 사도로써 감추고 싶은 부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그런 육체의 연약함을 오히려 담대히 말한다. 이것 뿐만 아니라 삶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오는 약함과 자신의 치부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백한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자신의 약한 것들을 인정하고 연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에 연약함과 약한 것을 고백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_고후12:10

 

바울은 “나를 위해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고후12:5) 고백한다.

우리 자신을 위해 약한 것들 부끄러워하지 않고, 분내하지 않고, 자랑하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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