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32 _아무 것도 없는 자
2024년 6월 셋째 주 칼럼(2024.6.23. ~ 2024.6.29.)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
욥기 38:1-11
고린도후서 6:1-13
마가복음 4:35-41
우리는 지난 주에 “약함이 강함이 됨”을 마가복음에 ‘겨자씨’와 에스겔의 ‘연한가지’의 비유를 통해 배웠다. 우리가 가지게 되는 ‘약함’이라는 것은 내가 원해서 생기지 않는다. 주변의 환경과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욥은 동방의 어느 누구보다도 부유하고 믿음도 신실한 사람으로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욥1:1)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약함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된다, 주위의 환경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약함을 보게 된다. 욥이 겪은 고난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저 정도로 바닥을 치는 경우가 있을까 싶다. 믿었던 가족들도 모두 떠나고 믿었던 친구들조차도 욥을 비난한다. 얼마나 괴롭고 힘든 시간일까! 꼭 이럴 때면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조용하시다. 꼭 숨어계신 하나님처럼 느껴진다.
욥은 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한참을 고통 가운데 혜메인다. 그런 와중에 친구들까지 찾아와 비난하고 그 비난에 욥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다툰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나타나신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욥38:1)
참 재미있다. 하나님께 욥에게 폭풍우 가운데 나타나셨다. 욥의 상황을 아시고 계신 하나님이시다. 그렇다 욥은 폭풍우 가운데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어찌할바를 모르고 비바람에 맞서고 있는 욥이다.
욥은 이제 그 누구보다도 약함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었다. 가족, 재물, 육신 그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폭풍우 가운데 있는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만물과 자연의 이치를 보여주신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의 손에 있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이끌어가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내가 두 손을 놓고 그런 하나님께 다 내어 놓을 때, 나의 약함과 연약함과 수치와 감추고 싶은 것을 다 내여 놓을 때 진정한 강함이 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의 약함은 자연스럽게 강함이 된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_욥1:1
바울은 예수를 믿고 자신의 눈을 싸고 있었던 율법이라는 비늘이 벗겨지고(행9:18)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진다. 어쩌면 이 비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강함이었는지 모른다. 예수를 믿기 전까지 바울은 유대인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길리기아 다소사람으로 로마시민권을 가졌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했고(행22:3),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베냐민 지파로 이스라엘 족속, 히브리인, 바리새인이었다. 율법에 열심히 있어서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유대인 중에 이보다 더 큰 자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그런 그가 예수를 믿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전혀 다른 일을 겪게 된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고 매도 수 없이 맞는데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 태장을 세 번이나 맞고 돌로도 맞고, 배가 파선하는 바다의 위험, 강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거짓형제의 위험,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다. 예수 믿고 삶 자체가 약함 덩어리가 되었다. 참 재미있다. 그랬더니 자신의 편지가 성경이 되어 13권이나 남겨지고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사도가 되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_고후11:23-27
바울은 자신 스스로 계속해서 경험한다. 자신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하나님께서 맘껏 사용하는 사람이 됨을 말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대부분 고기잡이에 통뼈가 굵은 사람이다. 갈릴리에서 어지간한 비바람은 눈하나도 깜빡이지 않을 사람들이다. 어느 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리 건너편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자고 하신다. 그런데 그날따라 비바람이 몰아치고 ‘큰 광풍’이 몰아치는데 고기잡이로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도 속수무책으로 광풍에 배가 뒤집힐 것만 같다. 그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로 자신만만했던 베드로 요한 야고보도 큰 광풍 앞에 자신의 약함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연약함,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풍랑을 잠잠케 하신다. 이 경험은 제자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큰 강함이 되었다. 앞으로 닥쳐올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를 배운 셈이다.
그리스도인은 약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주변의 환경과 상황이 더 연악한 자로 살아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우리는 그것을 빨리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없다. 정말 주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욥도, 바울도, 제자들도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함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 욥, 바울, 제자들에게 일하기 시작하셨다.
지금 여러분이 처한 상황은 어떤 상황인가? 내 맘에 들지 않는가? 힘이 드는가? 압박감이 몰려와서 고통스러운가?
지금 당신은 폭풍우, 큰 광풍 가운데 있다. 폭풍우 가운데 우리가 정신 차리고 생각해야 할 것은 주님을 찾는 일이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바로 이 상황이 나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깨닫는 시간이 된다. 나의 힘! 나의 경험! 나의 노하우!를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을 바라볼 때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는 살아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6:8-10)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일꾼 (0) | 2024.07.04 |
---|---|
당신의 가진 짐은? (0) | 2024.06.28 |
겨자씨와 연한 가지 (0) | 2024.06.14 |
죄가 가려진 자 (0) | 2024.06.07 |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1) | 2024.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