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29 _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2024년 6월 첫째 주 칼럼(2024.6.2. ~ 2024.6.8.)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
신명기 5:12-15
고린도후서 4:5-12
마가복음 2:23-3:6
‘안식일’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안식일’이 ‘주일’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지금도 계속 논쟁이 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그렇게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안식일을 철저히 깨부수신다. 그들 입장에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예수께서는 버젓이 행하셨다. 먼저 평생 유대교에 젖어있는 제자들에게 안식일의 개념을 확실하게 알려주셨다. 안식일에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에서 지키라고 규정한 안식일 규정을 깨뜨리신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_막2:27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밀밭사이를 지나가다 제자들이 길을 열고 이삭을 자른다. 마태복음에서는 배가 고파서 밀이삭을 잘라 먹었다 기록한다.(마12:1), 누가복음은 밀이삭을 제자들이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고 기록한다.(눅6:1)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하는 예수의 무리들을 향해 지적한다. 예수께서는 너무도 단호하게 안식일이라는 종교적 행위를 따르는 바리새인을 향해 안식일의 주인은 바로 ‘나’다라고 선포한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 규정을 정해서 행하는 모습은 하나님이 주인이 아닌 마치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처럼 행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안식을 만드신 것은 사람을 위해서 만드셨다. 그런데 반대로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선포하시기 위해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으로 가신다. 회당에 ‘한쪽 손 마른사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를 일으켜 세우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사람들을 향해 바라보며 말씀한다. 그리고 ‘한쪽 손 마른 자’의 손을 치료하신다. 아무리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어도 종교인들은 깨닫지 못한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질문을 하게 된다. 분명 성경은 십계명을 통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말씀하시는데 예수께서는 왜 안식을 지키지 않으시건가?
십계명에서 안식일 계명은 네 번째 계명이다. 하나님 사랑 계명 마지막 계명이다. 성경에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된다. 그런데 십계명 중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기록된 내용이 바뀌는 계명이 있는데 4계명인 안식일 계명이다. 출애굽기는 창조적 관점으로 기록한다. 6일 동안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으니 너희도 안식일을 지켜 안식하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신명기는 구원론적 관점으로 창조적 관점을 뒤엎어버린다. 지금까지는 창조적 관점으로 안식일에 지키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종 되었던 애굽에서 구원해 준 것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안식일을 지켜라 명령한다. 내용이 완전히 바꿨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_신5:15
우리가 안식일, 주일을 지키는 이유는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해 주셨음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로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어떤 특정한 날로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그 구원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날이 참된 안식일이 된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신게 아니라 더 잘 지키셨다. 종교인들이 자기들 나름대로 규정을 만들어서 안식일을 사람으로 지키게 만들었다면 예수께서는 배고픔에서 구원, 육신의 고통에서의 구원을 통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밀이삭을 잘라 비벼서 먹은 행위는 배고픈 사람을 위해 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해 안식일이 있을 뿐이다. 목마르고 배고픈 자들을 위해 오신 예수님이시다.
예수께서 육신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치료하신 행위는 몸이 아파 고통 가운데 있는 자를 위해 한 것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신다.
이 모두 배고픔에서 구원, 병마에서 구원이다. 바로 구원해 주심에 대해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 안식일이요, 주일이 된다.
우리가 모인 이 자리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자리이면 된다. 어떤 규정을 만들어서 주일이 주인이 되는 순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종교인들과 똑같은 우를 범하게 된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짧은 시대 가운데 살아가기에 그 시대에 팽배한 사상과 종교적 제도를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더욱더 성령의 조명하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_고후4:6
바울사도는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유대교의 율법이라는 아둠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는 순간 그 어두움에 빛이 비춰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 마음에 비춰지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무엇이 중한디!”
아끈공동체는 기존교회인 전통교회 전통이 아닌 초대교회의 전통, 1세기 사도들이 세운 교회의 전통을 따르고자 한다. 이 초대교회 전통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공생애 기간동안 가르쳐진 전통이다. 지금 우리가 이 길을 걷게 된 것도 “예수 그리시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이 우리의 마음에 비춰졌기에 가능하다.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2000년 전에 세워졌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맞는 교회의 모습을 만들어가느냐이다.
집에 있는 교회, 가정교회를 시작한지 5년이 되어 간다. 5월에는 지금까지 지내왔던 시절을 돌아보며 내 자신을 보고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직까지 정리되지 않는 여러 퍼즐조각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씩 다시 맞춰가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물론 이 퍼즐 조각들은 저희 가족이 경험하고 제가 경험한 것들이기에 다음의 조각들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고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면 좋겠다.
2년 전부터 홈스쿨을 시작하고 여러 홈스쿨 가족들과 함께 했던 ‘홀리펀’이라는 교제모임을 진행했었다. 물론 지금도 그 모임은 진행 중이다. 홀리펀 모임을 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허전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교제중심의 모임을 교회 안에서 이루어가면 정말 좋겠구나 계속해서 생각해 오고 있었다. 바로 그 조각이다. 이제 생각만 가지고 있던 이 조각을 교회공동체 안에서 이루었으면 한다. 모임의 이름은 ‘코이노니아’로 지어본다. 헬라어인 ‘코이노니아’는 성도의 교제, 친교라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이다. 코이노니아 모임은 놀이를 통해 전 세대가 함께 교제하고 친교하는 시간이다. 함께 즐기고 노는 시간이다. 지난 2년 동안 홀리펀 모임을 진행하면서 놀라운 일들이 많았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교제의 장이 만들어지면 더욱 더 파워풀한 가정의 회복과 교회의 회복이 일어나는 장이 될 것을 확신한다. 우선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하니 토요일이 좋을 듯 하다. 토요일 오전 10시~12시까지 모음을 진행해 보려 한다.
두 번째 조각은 가정교회공부와 성경공부이다. 아끈공동체에 들어오게 되면 가장 먼저 가정교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신 분들과 가정교회에 대한 공부를 진행하려 한다. 이미 만들어 놓은 양육교재를 바탕으로 진행하려 한다. 성경공부는 이미 우리가 함께 했던 ‘성경 숲 여행’을 시즌3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시즌1은 기초과정, 시즌2는 성경 전체 각 성경의 개관을 살펴보는 중급과정이다. 시즌3는 구체적으로 심도있게 들어가는 과정으로 성경 숲에서 더 나아가 성경나무(장제목)까지 공부하는 고급과정이다. 화요일에는 가정교회에 대한 공부를 진행하고 목요일에는 ‘성경 숲 여행’ 진행할 계획이다. 물론 사모하는 성도들의 참여가 필요하겠다. 가장 좋은 것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지만 필요하다면 참여를 독려할 수도 있다. 자녀를 양육할 때 아이들에게 자유만을 줄 때 일어나는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때론 필요한 교육과 훈계를 함께 하며 키워가야 한다. 아끈공동체 한 분 한 분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말씀으로 돌아가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씀을 내 안에 세기는 일이 될 것이다.
세 번째 조각은 아끈공동체 안에 각 교회의 네트워크 강화이다. 사실 가장 부족했던 부분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완도와 인제와 제주에 세워진 가정교회가 함께 더욱 든든히 세워지길 소망한다. 가정교회에는 세 가지 직분이 있다, 순회지도자, 지역지도자, 재정담당자이다. 순회지도자는 목사인 제가 되고, 지역지도자는 각 지역교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이다. 현재 완도에는 김기현님, 인제에는 이신혜님이 각 교회를 이끌어가고 계신다. 제주에는 아직 지역지도자가 세워지지 않았는데 이제 제주로뎀교회에도 지역지도자를 세울 시기가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지역지도자는 매월 첫째 주 금요일 8시~10시에 줌으로 만나서 교회에 대한 이야기와 현안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이와 더불어서 순회지도자인 저는 최소 매달 한 달은 제주 외에 인제평화교회와 완도나눔교회를 순회하며 함께 하시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지금까지 제가 제시한 이러한 조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여러 생각들이 드실거라 생각된다. 가감없이 자신들의 생각들을 나눠주시고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다. 앞에서 제시한 조각들 외에 제가 미쳐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조각이 있을 수 있다. 그 퍼즐조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함께 세워가는 아끈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까지 제가 발견한 퍼즐조각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보게 된 조가들이 되어 예수께서 세워지기 원하셨던 교회를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 이루어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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