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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지금도 기적이 우리에게...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37 _지금도 기적이 우리에게...

2024년 7월 넷째 주 칼럼(2024.7.28. ~ 2024.8.3.)

성령강림절 후 열째 주일

 

열왕기하 4:42-44

에베소서 3:14-21

요한복음 6:1-21

 

 

마태복음 14장, 마가복음 6장, 누가복음 9장, 요한복음 6장

위 말씀에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다 알고 계실거에요. 지난 주에도 이야기 나눴고 그 전부터 참 많이 나눴던 내용이니까요.

네, 맞아요. “오병이어” 사건이 기록된 성경의 장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드리면, 예수의 공생애 3년 중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언제일까요? 공생애 1년차? 2년차? 3년차?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죠.

 

오병이어 사건을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다른 복음서에 없는 한 가지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요.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_요6:4

 

바로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난 때가 유월절과 가까운 때라는 힌트이죠.

요한복음이 다른복음서와 다른 또 하나의 특징이 있는데 예수의 공생애를 시간 순서대로 3년을 기록하고 있다는 거에요. 예수께서는 유월절을 특별하게 지키셨고 기억에 남을 일들을 하셨어요. 그래서 유월절의 내용을 찾아보면 예수께서 몇 년 차에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죠.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번째 유월절은 요한복음 2장 13절이에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_요2:13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3대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칠칠절), 초막절(장막절)을 지키셨어요. 그 중 유월절을 지키는 예수에 대해 요한복음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지요. 공생애 1년 차 때 예수께서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고 바로 그때 성전정화를 하셨어요. 그때부터 유대인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어요.

 

요한복음에 기록된 두 번째 유월절은 요한복음 6장 4절이에요.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_요6:4

 

바로 오늘의 본문이죠. 예수의 공생애 2년차 유월절이에요.

바로 여기서 정답이 나왔네요. 예수께서는 자신의 2년차 공생애에 오병이어라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셨어요.

 

요한복음에 기록된 세 번째 유월절은 요한복음 11장 55절이에요.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거죠.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은 내가 pass over, 넘어가리라. 하신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겨 줄 것을 믿는 자에게는 동일한 은혜가 있게 되지요. 죄가 씻겨지고 죽음에서 넘어가는거죠. 바로 구원이에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_요11:55

 

오병이어와 같은 사건이 구약에도 있는거 알고 계시나요? 선지자 엘리사 때에도 오병이어와 같은 급식이적이 있었어요.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와서 처음 만든 떡 곧 보리떡 이십 개와 또 자루에 담은 채소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그가 이르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_왕하4:42

 

엘리사가 일으킨 급식이적은 흉년에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일으킨 이적기사에요. 기근이 한창이던 때에, 보리떡 스무 개와 채소 한 자루로 100여명을 먹인 이적이죠. 게다가 엘리사의 급식이적도 먹고 남았다고 기록해요. 역시 하나님께서는 차고 넘치게 주시나 봐요. 분명 우리 모두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차고 넘치게 은혜를 부어 주시고 계시겠지요.

 

바울사도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바로 이런 분이라고 편지를 쓰죠.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_엡3:20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시는 이라고 바울은 기록해요. 맞아요. 하나님은 차고 넘치게 주시는 분이세요.

 

그런데 왜 우리는 차고 넘치게 은혜를 누리지 못하죠? 질문할 수 있죠.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에 무엇이 차고 넘쳤으면 좋겠나요? 오병이어와 같은 급식이적이 차고 넘쳤으면 하나요? 맘껏 쓰고 남을 만큼 돈이 넘치게 있었으면 하나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은사와 능력에 따라 차고 넘치게 주시고 계시죠.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히 돈이나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주고 계세요.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서 나에게 왜 이런 은혜가 없지 생각할 수 있는거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우리는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거죠. 분명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너무 얕아서 미쳐 깨닫지를 못하는 있는거죠. 그렇기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기도해요.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이 기도가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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