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48 _영생을 얻는 방법
2024년 10월 둘째 주 칼럼(2024.10.13. ~ 2024.10.19.)
성령강림절 후 스물첫째 주일
아모스 5:6-15
히브리서 4:12-16
마가복음 10:17-31
어느 날 예수께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아 간절하게 질문한다. 너무도 진지한 그 사람은 누가 보아도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다. 입고 있는 옷이며 행동하는 모습이 범상치 않다. 게다가 예수께 달려오더니 무릎을 끓고 질문하는 그의 모습에 간절함이 보인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_막10:17
예수께서는 부자청년에게 지켜야 할 율법, 십계명 말씀을 지켜 행하라 말씀한다. 이에 청년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다고 말한다. 그의 종교심이 얼마나 강하고 열정이 있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 부자 청년에서 예수께서는 한 가지 부족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그의 재물이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것을 아시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라 하신다. 영생을 얻는 방법이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라니,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율법이라면 모두 다 지키려고 힘써왔던 그이기에 의기양양하게 예수 앞에 찾아왔던 부자청년이다. 그런데 자신의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라는 말씀에 부자청년은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예수를 떠나간다. 부자청년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부자청년은 영생 얻는 방법을 포기하고 슬픈기색을 띠고 돌아간다. 부자쳥년이 돌아가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가르침을 준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단다.” 이 말에 제자들은 모두 놀란다. 부자청년처럼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살면 되는거 아닌가? 왜 돈이 많으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운 거지?
“애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이런 선생님의 말씀에 제자들은 다시 질문한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재물이 문제인가? 돈이 문제인가? 재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 그렇기에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간다. 여기에 정답이 있다. 우리의 주인이 하나님이어야 하지 돈, 재물이 되거나 명예가 되거나 권력이 되어서는 안된다. 부자청년은 하나님의 자리에 재물이 있었던 것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들로 채워 넣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을 행해 외첬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_암5:6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직 살길은 하나님만 찾는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찾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들어와 있으면 우리에게 영생은 먼 이야기가 된다. 물론 돈도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권력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우선이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 우리는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인 줄로 착각하고 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어느 누구나 예외가 없다. 특히 목사가 더 이상한 선택할 때가 많다. 저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런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아주 분명한 기준이 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부자청년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있는 재물이었다. 그래서 부자청년은 재물을 버리지 못하고 떠나버렸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구원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 준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주 분명하고 단호하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_히4:12-1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봐야 하고 말씀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가장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
하루를 살아가면서 과연 성경을 보고 그 말씀에 나를 비추어 보고 있느냐이다. 이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은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된 길을 갈 수도 있고, 죄악에 빠질 수도 있고, 악인의 길에 설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 최대한 빨리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물론 누군가에 의해 알게 될 수도 있고, 책을 통해서, 자연만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기준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다. 나의 모습을 누군가가 이야기 해 줄 때 그냥 무턱대고 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보아 깨달아야 한다.
그렇기에 매일 말씀 보고 묵상하고 나를 비춰보는 일을 습관처럼 해야 한다.
시편 1편의 말씀이 딱 이러한 모습을 노래한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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