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45 _지혜롭게 행하는 믿음
2024년 9월 넷째 주 칼럼(2024.9.22. ~ 2024.9.28.)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
예레미야 11:18-23
야고보서 3:13-18
마가복음 9:33-37
오늘 우리는 지지난 주와 지난 주 말씀에 이어 행함 있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행함 있는 믿음’에 있어서 우리가 삶에서 행해야 하는 첫 번째는 차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살펴보았다. 두 번째는 혀, 말에 있음을 살펴보았다. 오늘도 ‘행함 있는 믿음’이란 무엇일까? 세 번째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어느 날 가버나움에 예수와 제자들이 갔던 때에 제자들끼리 말다툼이 일어난다. 서로 누가 첫째 인지, 누가 더 큰지 말다툼이 일어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더 큰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쓴다.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능일까? 동물의 세계를 보면 어떤 동물이건 서열을 정한다. 사람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자꾸 누가 큰지에 대해 경쟁적으로 다툰다. 12명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누가 큰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려 한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_막9:33-34
세상은 자신이 가진 힘, 권력으로 큰 자가 되려고 하고 그런 사람을 우리는 큰 자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 힘과 권력을 가지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주님께서 하신다. 첫째가 되고 큰 사람이 되려면 힘으로 권력으로 앞에 서는 자가 아니라 사람들의 끝이 되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될 때에 진정으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_막9:35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참 지혜의 말씀이다. 겸손하게 자신이 먼저 앞자리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끝자리에 앉는 것, 섬김을 받으려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는 것, 스스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어 끝에 앉는 사람이 될 때 자연스럽게 사람들로 하여금 큰 자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
우리는 어느 곳에 가든 겸손하게 앞자리가 아닌 끝자리에 앉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함 있는 믿음에 있어서 중요한 행함 중 하나가 바로 겸손한 자세로 끝자리에 앉고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예수의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난 지혜이기에 가능했다. 야고보사도는 위로부터 난 지혜에 대해 설명한다. 위로부터 난 지혜는 행함으로 보이게 된다. 시기와 다툼으로 자랑하는 것은 땅의 것이다. 절대로 자랑하지 않는다. 자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_약3:14-15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인지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인지 구별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면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는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이러한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반면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은 편견과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막상 삶을 살아가다보면 이러한 하늘의 지혜가 아닌 땅의 것을 추구하는 정욕을 따라갈 때가 많다. 이러한 곳에는 편견과 거짓이 가득하다.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이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고향 사람들의 죄와 악행을 지적하고 고발한다. 그때부터 예레미야는 아나돗 고향 사람들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어쩌면 예레미야의 이러한 행동은 끝자리에 앉는 행위인지 모른다. 당장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들의 죄와 악행을 숨기고 말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대선지자로 대접받고 큰자라고 불려졌을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의 상황에서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대로 행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 누가 크냐 다투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행하셨나?
예레미야도 예수도 모두 진정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되기 위해 욕 먹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행함 있는 믿음에 있어서 끝자리에 앉고 진정 사람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이지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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