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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말로 도와주고 살리는 혀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44 _말로 도와주고 살리는 혀

2024년 9월 셋째 주 칼럼(2024.9.15. ~ 2024.9.21.)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

 

이사야 50:4-9

야고보서 3:1-12

마가복음 8:27-38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말이 씨가 된다”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다”

 

말과 관련된 우리의 속담이 참 많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말을 참 잘 해야 한다. 아무 때나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꼭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_약3:6

 

성경에도 말에 대해 언급하는 곳이 참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야고보서이다. 특히 야고보서는 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말의 근원인 혀에 대해 언급한다. 혀는 ‘불’과 같다고 말한다. 혀는 ‘불의 세계’라고 언급하며 잘못 사용했을 때 온 몸이 더러워지고 모든 것을 불살라버린다고 경고한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_약3:8

 

무엇보다 깊은 깨달음은 이 혀를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그렇다. 말로 사람을 힘들게 만들고 심지어는 죽이게도 만든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 한 치 혀를 길들이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야고보는 혀를 돌려 말하기를 좋아하는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고 한다. 말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그만큼 악한 것이 나올 수 있기에 그렇다.

 

잠시 우리의 혀를 점검 해 보자. 나의 혀는 오늘 하루 어떤 말을 했고 그 말은 과연 사람을 살리는 말이었는지 죽이는 말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굳이 해야 하는 말이었나?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었나? 우리는 너무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만들 때가 많다.

 

이사야 50장에도 혀에 대한 말씀이 등장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혀는 메시야를 예언하는 말씀으로 앞으로 오실 메시야가 사용한 혀는 어떤 혀인지 말씀한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라” _사50:4

 

주님께서 가시고 계신 혀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학자들의 혀’이다. 학자들의 혀는 어떤 혀인지 뒤에서 설명한다.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 알고, 아침마다 깨우쳐 나의 귀에 들리는 것들을 학자들같이 알아듣는다. 학자들의 혀라고 해서 잘 설명하고 잘 가르치고 말로 이해를 잘 지키는 그런 혀가 아니다. 곤고한 자를 말로 도와주는 혀이다. 여기서 우리는 혀가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곤고한 자를 말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말을 하는 혀가 되어야 한다. 한 가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상대방의 죽음의 독과 같은 말이 들려질 때,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들려질 때 우리가 잘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위에 살펴본 혀와 말, 귀와 듣는 것에 대한 좋은 예시가 바로 오늘 마가복음 본문이다. 베드로는 살리는 말로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예수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알아듣고 곧바로 악한 말을 함으로 인해 질책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가이라샤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질문한다. 이 질문에 베드로는 너무도 멋진 말로 응답한다. 이때 베드로의 혀는 사람을 살리는 말이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잠시 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씀한다. 이제 곧 많은 고난을 받고 장도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잡혀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게 될 것을 말씀한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을 한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께 한 말은 사람을 죽이는 말이었다. 이 때 예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_막8:33

 

너무 좋은 말로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는 곧바로 잠시 후 악한 말로 졸지에 사탄이 되고 만다. 앞에서 살펴본 학자처럼 들을 수 있는 귀가 부족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베드로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이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지를 알았더라면, 거기에 다시 살아나실 놀라운 부활이 소식까지 들어있음을 알았더라면 죽음의 독을 내뿝는 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먼저는 우리의 혀가 곤고한 자를 말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말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은 참으로 불쌍하고 곤고한 자들이다.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도와주는 말을 하고 살려주는 말을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요즘 대리기사로 사람들을 만날 때 이러한 기도를 한다. “제가 만나는 이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말을 하게 하소서”

 

특히 가까운 가족에게 우리의 혀가 도와주는 말과 살리는 말로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야 한다.

 

이번 주는 한가위 추석 명절이기에 특히 가족 친지분들을 만나게 될 때에 우리의 혀가 학자들의 혀가 되어 곤고한 가족과 친구와 주위 사람들을 도와주고 살리는 힘이 되는 말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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