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42 _우리는 살아있는가?
2024년 8월 넷째 주 칼럼(2024.9.1. ~ 2024.9.7.)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째 주일
신명기 4:1-8
야고보서 1:19-27
마가복음 7:1-23
바울사도는 3차선교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로마교회 교우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 편지가 로마서이다. 이 편지가 쓰여진 시기는 주후 약 47년 전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초대교회 교우들이 로마서를 통해 이신칭의의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행함에 대한 부분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체포되고 가이사랴로 옮겨져서 약 2년 가량 가이사랴 감옥에 있게 된다. 그때가 약 60년경이다. 초대교회는 사도의 편지를 교회마다 돌아가며 회람하고 필사해서 보았다. 이렇게 20여년 동안 초대교회에 로마서의 영향으로 이신칭의 믿음에 대한 부분이 지나치게 강조되게 된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그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편지를 쓴다. 너무 믿음으로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을 행함과 함께 가는 바른신앙으로 바로잡기 위함이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_약2:26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초대교회에 쌍벽을 이룬 서신이다. 야고보는 너무 믿음만 강조하다보니 행하지 않는 성도들을 보며 펜을 든다. 믿음이 있다하면서 행함이 없는 것은 온전한 신앙인이 아님을 강조한다. 로마서와 야고보서는 서로 반대되는 서신이 아니라 각 시대와 상황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강조한 것이다. 바울사도가 로마서를 쓸 시기는 율법으로 인해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었기에 분명히 이신칭의 믿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던 시기이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_약1:22
믿음과 행함은 함께 가게 된다. 행함을 앞세울 수는 없다. 믿음 없는 행함은 자기의 의를 드러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다면 행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만약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의심해 봐야 한다. 분명 믿음의 문은 좁은 문이다. 주변을 돌아보아도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와 제자들을 질책한다.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트집 잡는다. 장로들의 전통을 따르던 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손에 물을 뿌리고 먹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게 된다. 예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지적한다.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그 본래의 의미는 헤아리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행하고 자신들은 말씀에 순종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종교인이 되는 순간 이러한 우를 범하기가 쉬워진다. 자신의 종교적 규율만 강조하고 지키는 것만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처럼 여긴다. 이러한 모습은 이단에서도 동일하게 그려진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_막7:9
모세는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강조하며 말한다. 이 말씀이 신명기이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과 율법들을 꼭 듣고 행함으로 옮길 것을 강조한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_신4:1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할 때 너희가 살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겉핥기식으로 문자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말씀의 본래의 의미를 잘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일곱족속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다. 그곳에 들어가게 되면 이미 정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다른 족속이 있고 그들이 섬기는 신들과 문화가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들의 신들과 문화에 젖어들 수 밖에 없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_신4:6
모세는 계속해서 강조한다. “지켜 행하라” 그것이 너희의 지혜가 되고 지식이 된다. 그럴 때 여러 민족이 ‘큰 나라 사람’이라 부르고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우리가 가진 것은 솔직히 별로 없다. 가진거라고는 예수 믿는 믿음뿐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 믿지 않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큰 사람으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행함에 있다.
먼저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는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 공부를 통해서 듣게 된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말씀은 항상 사람 중심이다. 일 중심이 아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말씀이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의 형상을 입고 오신 이유이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이 땅에서 우리가 잘 살아가는 것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살아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진정 잘 살아가고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여러분은 지금 살아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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