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43 _행함과 믿음
2024년 9월 둘째 주 칼럼(2024.9.8. ~ 2024.9.14.)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째 주일
이사야 35:1-10
야고보서 2:1-17
마가복음 7:24-37
지난 주부터 ‘행함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기 시작하면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행동을 하게 하시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믿음이 들어오면 행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된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_약2:26
예수께서 하셨듯이 이웃 사랑하기를 내 자신과 같이 하게 된다. 그런데 초대교회에서도 그렇지 못한 모습들이 있었다. 야고보 사도는 행함 있는 믿음을 이야기할 때 차별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_약2:1
야고보는 회당에 들어오는 두 사람의 비유를 말한다.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는 가난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은 좋은 자리로 인도하고 가난한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_약2:4
이러한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니기 정말 어려운 곳이 되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교회 다니려면 돈 좀 있어야 하는거 아니야!” 안 그러면 교회 안에서 무시를 당하고 천대를 당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람의 겉모습으로 차별할 때 야고보는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된다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다. 오늘 본문에도 그런 예수의 모습이 잘 그려진다. 두로 지방에 가시게 되었을 때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한다. 자신의 딸이 귀신에 들려 있는데 귀신을 쫓아내 달라는 부탁이었다. 예수께서는 이방여인임에도 불구하고 굳은 믿음으로 간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수로부니게 여인을 시험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의 지혜로운 말로 예수의 질문에 응답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 이방여인이 무엇이라고 복음서에 기록이 되어 후세에까지 이렇게 전해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이방여인의 딸의 귀신을 쫓아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준주는 좋은 예시가 되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시 하찮게 여겨졌던 이방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대우하셨다.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_막7:26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 지방에서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이다.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예수를 데리고 나아왔다. 이 이방인 병자에게도 예수께서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처럼 동일하게 치유하신다. 물론 조금은 다른 방식을 취하신다. 말씀 한 마디로도 충분히 치료하실 수 있지만 앞에 세우고 손가락을 귀에 대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대시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에바다” 외치셨다. 그 순간 귀가 열리고 맺혀있던 혀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방인에게도 예수께서는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치료해 주셨다.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_막7:35
예수께서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보다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과 함께 하셨고 그들과 함께 지내셨다.
이러한 예수의 모습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미 예언 되어졌던 모습이다. 약한 손을 강하게 하고,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고, 겁내는 자를 굳세게 하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고 저는 자가 뛰게 되고, 말 못하는 자가 노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광야와 사막, 뜨거운 사막, 메마른 땅에 시내가 흐를 것이라고 말한다.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_사35:6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모습이 뜨거운 광야 사막, 메마른 땅이었다. 그런 우리로 하여금 시내가 흐르게 해 주셨다. 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신다.
연약한 자, 병든 자, 가난한 자와 함께 하셨던 주님이시기에 우리에겐 더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더 감사하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는 또 언제나 그러한 연약한 자의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런 은혜를 입었기에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예수께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모두 가능한 이야기다. 각자의 어려움에 처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행함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야고보는 이러한 행함 있는 믿음을 이루는 것을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_약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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