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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불의의 세계 vs 학자의 혀

 

‘집에 있는 교회 칼럼’ #90

 

2021년 9월 둘째 주 칼럼(2021.9.12. ~ 2021.9.18.)

성령강림절 후 열여섯째 주일 성서일과

 

이사야 50:4-9

야고보서 3:1-12

마가복음 8:27-37

 

 

이번 주 성서일과 말씀은 너무도 주제가 명확합니다. 바로 ‘말’입니다.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에 대해 보여줍니다. ‘불의의 세계’와 ‘학자들의 혀’입니다. 말은 불의의 세계여서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과 학자의 혀가 되어 곤고한 자를 도와주고 깨우치게 하는 고마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이야기 하면서 행함에 있어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합니다. 야보고는 ‘말’을 생각해 볼 때 진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비유들은 정곡을 콕콕 찌릅니다. ‘말’의 비유로 ‘재갈’, ‘배의 작은 키’, ‘작은 불‘을 사용합니다. 혀는 우리 몸에서 정말 작은데 우리의 몸을 통제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을 통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말에 실수가 많아서 앞에선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선생이 되면 말을 많이 해야 하고 그 만큼 실수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살려야 하는데 죽이는 자가 됩니다. 앞에서 말한 비유처럼 혀는 작지만 우리의 몸을 제어하는데 이것이 잘 제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무도 명확하게 단정합니다. 혀는 ’불의의 세계‘로 혀를 길들일 사람이 없고 ’쉬지 아니하는 악‘, ’죽이는 독‘이라고 규정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_약3:1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_약3:6

 

 

이쯤돠면 ’혀‘에서 나오는 말이 우리의 믿음도 좌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의 실수가 많고 이를 제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믿음을 실수 없이 잘 지켜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찬양하게 합니다. 종의 노래입니다. 모두 네 편의 종의 노래가 있습니다. (42:1-9, 49:1-7, 50:4-9, 52:13-53:12) 그 중 세 번째 종의 노래에 ‘학자들의 혀’라는 말이 기록됩니다. 앞으로 오실 메시야는 ‘학자들의 혀’를 가지고 오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학자들의 혀는 곤고한 자를 도와주고 깨우치게 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오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_사50:4

 

그 뿐 아니라 이 학자들의 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순종하고 어떠한 모욕에도 거스르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끄러운 말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와도 다투지 않습니다. 혀가 가지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혀에는 죽이는 능력도 있지만 살리는 능력도 있어서 오시는 메시야에게는 이러한 살리는 능력이 가득하심을 보여줍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나옵니다. ‘학자의 혀’와 ‘불의의 세계’ 모두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우리는 마주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어부로 자기 성격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일자무식이라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제자로 삼으십니다. 그것도 수제자로 말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수제자로 삼으신 이유가 여기에서 빛을 발합니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스승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예수의 질문에 베드로는 학자의 혀로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 너무도 멋진 학자들의 혀로 대답합니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_막8:29

 

이 정도 알고 있으니 이제 비밀을 말해도 되겠다는 듯 자신이 이 땅에 내려와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베드로는 예수의 마지막 일을 듣고 ‘불의의 세계’가 작동하고 맙니다. 마치 자기만 의로운 양! 마치 자기만 스승을 생각하는 양! 불의의 혀를 놀립니다.

 

예수께서는 불의의 세계가 드러나는 순간 가차없이 내리 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_막8:33

 

베드로는 한치 혀로 멋진 수제자가 되었다가 사탄이 되고 맙니다.

 

혀가 가진 말의 힘입니다. 사실 이 장면은 멋진 베드로의 모습만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결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또 신중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믿음 있는 자의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반드시 제어해야 하는 것 ‘혀’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믿음의 본질을 지켜가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복음서의 중심, 한 가운데에 베드로의 신앙고백(마16:16, 막8:29, 눅9:20)이 있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우리 믿음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그 신앙고백 이후에 따라오는 비본질이 있음을 우리로 분명하게 기억해야 합니다.

 

학자들의 혀 vs 불의의 세계

여러분은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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