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92_ 작은 자 중심성
2021년 9월 넷째 주 칼럼(2021.9.26. ~ 2021.10.2.)
성령강림절 후 열여덟째 주일 성서일과
민수기 11:24-30
야고보서 5:13-20
마가복음 9:38-50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모세를 통해 70인의 장로를 뽑게 하십니다. 물론 장인 이드로를 통해 지혜를 받기도 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지파별로 70인의 장로를 선별하여 뽑은 후에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살피도록 하였습니다.
모세를 통해 장로를 뽑고 70인의 장로를 장막에 둘러 서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 그 순간 모세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영이 장로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기 시작합니다.
“모세가 나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알리고 백성의 장로 칠십 인을 모아 장막에 둘러 세우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에게 임한 영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영이 임하신 때에 그들이 예언을 하다가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_민11:24-25
그렇게 하나님의 영이 모세와 70인 장로에게 임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장로 모임이 끝나고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일어났던 예언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70명의 장로로 이름이 올려졌던 두 사람이 장로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고 진영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 두 장로의 이름이 엘닷과 메닷입니다.
“한 소년이 달려와서 모세에게 전하여 이르되 엘닷과 메닷이 진중에서 예언하나이다 하매” _민11:27
70인 장로 모임 중에 장막에 모였던 장로들만 하나님의 영이 임했던 것이 아니라 피치못할 사정으로 장막으로 나오지 못했던 장로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이 임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장막에 나왔던 여호수아와 장로들 가운데에는 이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택한 자 중 한 사람 곧 모세를 섬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말하여 이르되 내 주 모세여 그들을 말리소서” _민11:28
모세는 엘닷과 메닷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생각, 내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이해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너무도 잘 이해했던 모세입니다.
어느 날 요한이 예수께 나아와서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해 칭찬받을 줄 알고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금하지 말라고 타이릅니다.
앞에서 살펴본 모세와 예수의 생각과 여호수아와 요한의 생각 이들의 판단의 기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는 보통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여호수아와 제자들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절대로 못하게 하고 금지시키고 나만의 특권 인양 으스대기에 바쁩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아야 할 부분은 “왜 모세와 예수께서는 금지하지 말라고 했느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하는 역사는 반드시 ‘작은 자 중심성’을 가지게 됩니다.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 내는 그러한 행위가 모두 ‘작은 자 중심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예언한다고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의 특권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은 오로지 병들고 힘들어 하는 이들을 돕는데 받은 은사를 모두 쏟아부었습니다.
민수기에서 엘닷과 메닷이 장로로 기명되었는데도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고 진영에 머문 이유가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장로로써 분명 연약한 자들을 돌보는 일로 인해 나오지 못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렇게 동일하게 하나님의 영이 그들에게도 임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_막9:41-42
예수께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제자들을 따라오지 않은 어떤 자는 분명 작은 자에게 물 한 그릇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작은 자 중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작은 자에게 잘못한 손을 차라리 찍어서 버리라고 하시고 작은 자에게 잘못한 발은 차라리 찍어서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_막9:50
예수께서는 ‘작은 자 중심성’이 바로 소금의 역할임을 마지막으로 말씀합니다.
야고보의 마지막 당부에서도 ‘작은 자 중심성’을 강조합니다. 진정한 장로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고난 당하는 자, 병든 자를 위해 장로를 청하여 기도하라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작은 자 중심성’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가 장로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_약5:14
우리가 이 땅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작은 자 중심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만 악의 뿌리 (0) | 2021.10.07 |
---|---|
돕는 베필 (0) | 2021.10.01 |
위로부터 난 지혜 (0) | 2021.09.16 |
불의의 세계 vs 학자의 혀 (1) | 2021.09.10 |
최고의 법 (0) | 2021.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