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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위로부터 난 지혜

‘집에 있는 교회 칼럼’ #91_ 위로부터 난 지혜

 

2021년 9월 셋째 주 칼럼(2021.9.19. ~ 2021.9.25.)

성령강림절 후 열일곱째 주일 성서일과

 

예레미야 11:18-23

야고보서 3:13-4:3

마가복음 9:30-37

 

 

 

2021년 추석연휴입니다.

각자의 가정에 예배를 위해 모여계실텐데.. 이번 추석에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에서 행함이 중요함을 말하고 그 행함에 있어서 핵심이 ‘말’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말을 잘 사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실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이 말을 할 때에 그 말의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말을 할 때에 위로부터 난 지혜로 한 것인지, 아니면 나의 정욕을 위해서 한 것인지를 구분해서 하는 방법을 야고보는 알려줍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_약3:13

 

먼저 야고보는 땅의 것, 정욕의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잘 살펴보십시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_약3:14

 

우리가 하는 말이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말인지 살펴야 합니다.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진리를 거슬러 말하는 것인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면 이러한 류의 말이 정말 많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불평, 불만, 시기, 다툼으로 하는 말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말 중에 자랑하기 위해, 나를 드러내기 위해 하는 말들도 참 많습니다. 성경의 진리가 아닌 세상의 논리와 관례를 따라 그것을 꼭 해내야 하는 것으로 말 할 때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의 말은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_약3:15

 

이러한 지혜의 말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제 위로부터 난 지혜를 살펴보겠습니다. 야고보는 위로부터 난 지혜에 나타나는 열매가 다섯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째 성결, 둘째 화평, 셋째 관용, 넷째 양순, 다섯째 긍휼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모두 선한 행함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서 위로부터 난 지혜는 연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더욱 더 세워주는 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위로부터 난 지혜에 나타나지 않는 것 두 가지도 말합니다.

편견과 거짓입니다. 어떤 편견의 말도 거짓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의 이야기에서 땅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제자들 사이에 위로부터 난 지혜가 아닌 땅의 것, 정욕의 것, 귀신의 것으로 서로 말합니다.

 

어떻게 됐겠습니까?

 

당연히 다툼이 일어나고 시기가 일어났겠지요. 아마 서로 잘났다고 다투었을 것입니다. 땅의 것을 추구할 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위로부터 난 지혜가 무엇인지 말씀해 줍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우리가 위로부터 난 지혜로 이야기하게 되면 물론 선한 열매가 맺어집니다. 여기서 선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은 땅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의 가시가 됩니다. 그렇기에 핍박도 반드시 오게 됩니다.

 

예레미야가 아나돗사람들에게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의 위로부터 난 지혜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분명 예레미야는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했습니다. 자신의 욕망, 땅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큰 다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위로부터 난 지혜의 말을 할 때 이것을 잘 분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받는 핍박과 시기 다툼의 구분입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욕망으로 정욕의 것을 추구하면서 생긴 다툼입니다. 예레미야가 겪는 것은 일방적으로 받게 되는 핍박에 해당됩니다.

 

추석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여서 우리가 서로 말 할 때에 위로부터 난 지혜의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예수께서는 위로부터 난 지혜의 말을 끊임없이 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땅의 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눈의 가시였습니다. 우리가 가정교회를 세워가는 것! 이것은 분명 위로부터 난 지혜로 말미암음입니다. 기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의 말을 가지고 선한 열매가 더욱 더 많이 맺어지는 추석연휴 기간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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