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89_ 최고의 법
2021년 9월 첫째 주 칼럼(2021.9.5. ~ 2021.9.11.)
성령강림절 후 열다섯째 주일 성서일과
이사야 35:1-10
야고보서 2:1-13
마가복음 7:24-37
마태복음 7장 24~37절에는 두 사람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입니다. 예수께서는 왜 이들을 만나시고 이들을 치유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은 마태복음에서 가나안여인으로 기록됩니다. 얼핏 보아도 예수께서 찾아가서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이방 여인이고 별볼일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믿음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아마도 대부분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욕을 퍼붓고 침 뱉고 돌아섰을지 모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로부터 어떤 말을 듣더라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귀신 들린 딸이 엄마의 믿음으로 치유함을 받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_막7:27
예수께서는 두로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해서 갈릴리로 돌아오는 여정을 다녀오십니다. 여기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의 이야기는 데가볼리 지방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지금은 요르단 제라쉬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데가볼리 지방에 이르렀을 때 사람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다른 병자들과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하십니다. 말씀 한 마디면 될텐데 참 이상한 행동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비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_막7:33-34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도,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도 이스라엘 지역에서 병자를 치유하실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이방인이어서 그러셨을까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자들이어서 그러셨을까요?
이들은 이스라엘에서 만난 병자들보다 더 험한 대접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치유하지 않으시고 좀 더 과격한 말로, 좀 더 독특한 방식으로 취하십니다. 더욱 더 이들을 기억 속에 남기시기 위한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만약 이들도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곧바로 치유 해 주셨더라면 이들은 성경에 기록이 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예수의 이러한 모습은 이사야의 35장 메시야 왕국에 대한 노래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사야 35장은 황무지 같던 이 세상이 메시야의 도래로 회복될 것을 예언합니다. ‘약한 손’, ‘떨리는 무릎’, ‘겁내는 자’, ‘매인의 눈’, ‘못 듣는 사람의 귀’, ‘저는 자’. ‘말 못하는 자’ 이러한 자들을 메시야가 오셔서 모두 치유 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러한 자들을 모두 치유해 주셨습니다. 모두의 외면을 받는 이방인 병자들까지도 예수께 나아오는 자들은 모두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도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자들을 돌보시고 치유하신 것은 이들이 모두 자신의 분신이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_약2:5
야고보는 가난한 자들이 택함을 받고 가난한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고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찌보면 너무 과격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사실 예수께서 앞에서 수로보니게 여인과 귀 먹고 말 더듬는 자에게 한 것과 같은 목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이것이 없이 종교적 행위만 가득하면 결단코 심판의 자리에 오른편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교회 건물 안 종교행위만 가득합니다. 정착 삶의 자리에서 가난한 자들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그렇기에 행함이 없으면 믿음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에 기록된 최고의 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가 됩니다.
예수와 같은 차별없는 공평한 태도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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