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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비주류 인생

‘집에 있는 교회 칼럼’ #86_ 비주류 인생

 

2021년 7월 둘째 주 칼럼(2021.7.4. ~ 2021.7.10.)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 성서일과

 

아모스 7:7-17

에배소서 1:3-14

마가복음 6:14-29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_눅1:5

 

세례요한은 굵고 짧은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제사장 아비야 가문의 제사장 스가랴와 어머니는 엘리사벳 사이에서 나이 들어 정말 어렵게 낳은 너무도 귀한 외아들입니다.(눅1:5-45,57-80) 게다가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친족으로 예수님과도 친족사이가 됩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_눅1:36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외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비야 가문의 제사장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주류의 삶을 내려놓고 비주류의 삶을 선택합니다. 요한은 광야로 나아갔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합니다.

주님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낙타를 잡아 그 가죽으로 웃을 지어 입습니다. 때가 차매 요한은 요단강으로 나아가 많은 사람들 앞에 섭니다. 그리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의식과 함께 회개를 선포합니다. 세례요한의 이러한 선지자적인 외침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며 나아왔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세례요한의 제자가 되려고 몰려듭니다. 요한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선지자적 외침을 멈추지 않습니다. 자신의 세력이 커졌다는 것은 주류가 되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주류가 되어 주류의 삶을 살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비주류의 삶을 살아갑니다. 자신은 그저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자로 주님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하찮은 자임을 공공연히 말합니다.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_눅3:19-20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_막6:27-28

 

헤롯 왕을 향해서도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망합니다. 주류로 살려고 결심했더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비주류의 삶,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이기에 선지자적 책임을 다합니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분봉왕 헤롯을 책망했다는 이유로 옥에 갇히고 결국에는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생을 마치고 맙니다. 세례요한은 주류에 속했던 사람이었지만 주류의 삶을 내려놓고 자발적으로 비주류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다음으로 함께 살펴볼 사람은 아모스입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 요로보암 2세 때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아모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북이스라엘이 가장 번성했던 시기이면서 북이스라엘이 정점을 찍고 점점 쇠락의 길로 내려가는 시점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자는 남유다에서 활동했지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에서 호세아와 함께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는 다른 선지자와 다르게 시골(드고아)에서 농사를 짓던 농사꾼입니다. 시골에서 양을 기르는 목자이면서 뽕나무를 재배하는 농사꾼이기도 하였습니다.(암1:1,7:14)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_암1:1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_암7:14-15

 

북이스라엘에는 벧엘과 단에 성전이 있었습니다.(왕하12:29) 아모스는 그 중 벧엘에 있는 성전으로 가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선포합니다. 벧엘 성전의 제사장은 아마샤였습니다. 아마샤는 주류에 속한 종교인이었고 반면 아모스는 목자요 농사꾼인 비주류에 속한 일반평민이었습니다. 아마샤 눈에는 아모스가 얼마나 같잖아 보였을까요? 처음에는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힘이 있고 사람들을 요동케 했습니다. 그래서 아마샤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에게 이 소식을 알리기까지 하게 됩니다. 아모스는 거기에 전혀 굴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유명세를 타서 주류로 살아가려고 결심하지 않고 비주류의 삶을 끝까지 이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끝까지 다 합니다. 북이스라엘이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멸망하고 만다는 이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샤와 아모스의 대결 장면에서 비주류인 아모스가 겪었을 엄청난 억압과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조금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사회이든 지금도 주류가 아닌 비주류가 일어나면 주류에 속한 이들은 이것을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억압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 합니다.

 

세례요한이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아왔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도 주류에 속한 종교인들은 비주류에 속한 시골 목수 예수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고 억압하고 죽였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세워가는 ‘집에 있는 교회’는 이러한 비주류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세례요한처럼, 아모스처럼, 예수처럼 비주류에 속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 중심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분명 주류에 속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 열심히 얼마나 컸는지 비주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찾아서 잡아 넘기고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주님을 만나고 주류의 인생을 포기합니다. 비주류로 살아가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가 겪어야 했을 억압과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에베소서 1장 3-14절은 바울사도가 로마감옥에서 에베소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서론에 해당합니다. 편지의 시작을 삼위일체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기록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신 성부, 성자, 성령 각각의 사역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세례요한, 아모스, 예수님, 바울사도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진정 주님을 만나 선지자적 삶을 살아가게 될 때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하려 하심이라” _엡1:10

 

비주류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의 것을 깨닫게 하시고 이 땅에서 하늘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면 땅에 속한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앞으로도 동일하게 계속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위치를 항상 확인하면서 어느 자리에 서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도들이 세웠던 가정교회는 비주류로 살아가는 중요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모습에서 우리는 잘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의 지금의 상황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교회를 세워가는 모습이 그러한 모습중에 하나였습니다. 집이 교회일 때 가능했습니다.

 

비주류였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 주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주류가 되려고 애쓰지 않아야 합니다.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려고 애써야 합니다. 아끈공동체가 이렇게 지금처럼 계속해서 비주류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한 교회가 커지려하면 계속해서 쪼개고 나누어서 비주류가 됩니다. 작은 일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작은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는 비주류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아끈공동체는 비주류 인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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