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09 _우리는 각각 아름다운 지체입니다.
2022년 1월 넷째 주 칼럼(2022.1.23. ~ 2022.1.29.)
주현절 후 셋째주일
느헤미야 8:1-10
고린도전서 12:12-31
누가복음 4:14-21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모습입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하신 이사야 61장 말씀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말씀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사히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_눅4:18-19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말씀합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에게 자유케 하고 은혜를 주시는 일입니다. 여기서 이 일을 이룰 수 있는 전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입니다. 우리가 202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는 성령의 임재를 받은 자 곧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을 받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자는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위해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계속해서 살펴보는 것과 같이 성령의 임재를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를 말씀합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성령의 은사를 마무리하면서 각각의 은사를 받은 이들에 대한 몸에 대한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바울사도는 은사를 이야기하면서 결론에서 발, 손, 귀, 눈 몸의 어느 것 하나도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고 모두가 소종함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곧 앞에서 살펴본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일들과 연결이 됩니다.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는 발, 손, 귀, 눈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혼자 힘으로는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함께 할 때에야 비로소 한 몸을 이루고 온전한 지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_고전12:24-25
예수께서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을 품으신 진정한 이유는 우리 모두로 하여금 한 몸을 이루고 온전한 지체가 되기를 바라심입니다.
느헤미야의 개혁 중에 에스라를 내세워서 말씀 앞에 다시 서는 이 장면은 봐도 봐도 명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면에 가장 감명 깊게 보는 것은 말씀을 볼 때 온 회중이 일어나고. 은혜를 받아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아닙니다.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도 함께 나누며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느혜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_느8:10
성령을 받고 말씀을 온전히 잘 해석하고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는 준비되지 못한 자까지 품을 수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아끈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지체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쓸 데가 없는 사람이 없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도 소중한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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