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10 _떠나야 할 고향
2022년 1월 넷째 주 칼럼(2022.1.30. ~ 2022.2.5.)
주현절 후 넷째 주일
사도행전 1:4-10
고린도전서 13:1-13
누가복음 4:21-30
2022년 설연휴입니다. 이번 명절은 오미크론의 영향으로 또 예전과는 다른 조용한 명절을 보내는 듯합니다. 명절하면 고향이 떠오릅니다. 마침 설연휴에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의 주제가 ‘고향’입니다. 고향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 속에서 살펴보게 되는 고향의 개념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향의 개념과는 조금은 다른 개념일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말씀하는 고향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_눅4:24
누가복음 4장 16-37절 말씀은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말씀을 해석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고향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지자는 고향에서 배척을 당한다는 말씀을 예수께서 하시고 그 말씀대로 고향사람들은 선지자가 되어 나타난 예수를 배척합니다.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설명절이면 대부분 고향으로 갑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리움과 향수가 깃들인 곳이 고향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고향이 힘듬과 어려움을 주는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향은 현재 지금 나의 모습이 아닌 고향에 살았던 옛 모습의 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배척받으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는 나사렛에서는 가난한 목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더니 범상치 않은 모습으로 말씀을 해석하고 선지자가 되어 나타났으니 고향사람들에게는 배아픔의 대상이 되었겠지요. 가난하고 무식한 목수가 자신들을 가르치려하니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 특히 변화되기 전에 나의 모습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됩니다.
성경에는 고향을 떠나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믿음의 길을 갈 때 고향을 떠나라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_행1:8
이 말씀도 너희의 고향 예루살렘, 유다를 떠나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갈 것을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그렇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왜 성경은 고향을 떠나라고 하는 것일까요?
과연 고향은 어떤 곳일까요?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_고전13:11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으로 너무도 유명한 장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은사에 대한 장황한 설명 중에 11절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와 ‘장성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말미에 등장합니다. 사랑과 무슨 관계가 있기에 이런 말씀을 한 것일까요?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성령으로부터 받은 많은 은사들 중에 최고의 은사! 은사의 종착지는 ‘사랑’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 의마가 없어집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말하는 것’, ‘어린 아이와 같이 깨닫는 것’, ‘어린 아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향의 개념은 ‘어린 아이와 같은 말, 깨달음, 생각’에 머물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고향이라는 곳이 어린 아이와 같이 만드는 곳이 된다면 그곳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곳에서는 진정한 사랑이 꽃 피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했습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로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향인 예루살렘과 유다를 떠나도록 흩으셨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말과 깨달음과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나사렛 사람들은 장성한 사람이 되어 돌아온 예수의 말과 깨달음과 생각을 따라갈 수가 없어 예수를 배척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로 어린 아이와 같은 말과 깨달음과 생각에 머물게 만드는 고향은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칼럼을 쓰는 동안 저에게 있어서 어린 아이와 같은 말과 깨달음과 생각이었던 고향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에게 어린 아이로 머물게 만들었던 것은 기존에 제가 속해 있던 전통교회였습니다. 기존 전통교회인 고향을 떠나 가정교회로 가는 길은 저로 장성한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길은 여전히 저에게 주어진 고향을 떠나는 여정입니다.
올해 새롭게 어린 아이와 같은 고향에서 떠나라고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교육과 가정을 분리해서 ‘어린 아이의 말, 깨달음, 생각으로 머물러 있게 만들었던 학교제도’라는 고향에서 떠나라 하십니다. 그래서 장성한 사람으로 세우실 새로운 길 홈스쿨로 나아갑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말, 깨달음, 생각에 머물게 만들었던 기존의 학교제도에서 벗어나서 홈스쿨, 언스쿨의 길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벗어나야 할 고향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우리로 장성한 사람이 되게 만들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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