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12 _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2022년 2월 둘째 주 칼럼(2022.2.13. ~ 2022.2.19.)
주현절 후 여섯째 주일
예레미야 17:5-11
고린도전서 15:12-20
누가복음 6:17-26
제주에 매화가 피기 시작했습니다. 입춘도 지나고 이제 봄이 오나봅니다. 그러고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는 듯 합니다.
2022년에는 더욱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복을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말씀 중에 산상설교(마5-7장)가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말씀이 누가복음에도 기록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평지설교’라고 부릅니다. 오늘은 평지설교에서 말씀하시는 예수의 가르침에 주목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_눅6:20-21
평지설교에 등장하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입니다. 이들 세 종류의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의 유형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려 합니다. 우리는 더 맛있고 풍족하게 먹고 배부르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웃고 즐거움과 기쁨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와 반대의 사람이 되라 말씀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더 가난한 사람이 되라”합니다. 할 수 만 있다면 “더 주린 자가 되라”합니다. 할 수 만 있다면 “더 많이 우는 자가 되라”합니다. 그럴 때에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놀라운 진리의 가르침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세 종류의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것을 비워내는 사람입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노력해 보셨습니까? 참 이상하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영혼이 점점 더 피폐해지는 것을 우리는 쉽게 발견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나의 것을 계속해서 비워내고 흘려보낼 때 기쁨과 감사가 더욱 넘쳐나게 됩니다.
먹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에서도 맛집투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미디어에서는 맛집 찾아 삼만리입니다. 수많은 예능프로에서 음식에 관련된 프로로 넘쳐납니다. 그런데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는지 모릅니다. 너무도 과한 음식에 대한 욕심이 우리를 주린 자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을 더 선호하고 유모가 있는 사람이 되려고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것보다 슬픔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전도서 말씀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합니다. 초상집은 함께 울어야 하는 곳이고 잔칫집은 함께 웃어 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성경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하라 말씀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_전7:2
또 한편으로 ‘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는 마음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진리를 추구하는 가난한 마음, 진리에 대해 배고파하고 그것을 찾고자 애쓰는 마음, 진리 위에 서기 위해 울며 몸부림치는 마음, 이렇게 가난한 마음, 주린 마음, 우는 마음을 가진 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이 마음을 이렇게 다스린다는 것이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_렘17:9-11
가난해 지고, 주린 자가 되고, 우는 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비워내야 하는데 이 마음을 알 길이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 속담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이 있습니다. 이 마음을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눈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를 ‘자고새’로 비유합니다. 성경에서 자고새는 자기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는 어리석은 자를 비유로 사용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모두 내 것인 줄 알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나의 만족과 건강을 위해 더 맛있는 것을 찾고 더 풍족하게 먹고 마시려 하고, 함께 아파하기보다 쾌락과 기쁨만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이 자고새와 같이 자기가 낳지 않는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은 모습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품지 않고 더욱 가난한 자가 될 수 있고, 주린 자가 될 수 있고, 함께 우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_고전15:19
바울사도는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기에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자가 되고, 주린 자가 되고, 우는 자가 되는 것이 곧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자의 모습이 됩니다.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광의 광채 (0) | 2022.02.24 |
---|---|
주의 영이 계신 곳 (0) | 2022.02.18 |
부르심에 반응하기 (0) | 2022.02.03 |
떠나야 할 고향 (0) | 2022.01.26 |
우리는 각각 아름다운 지체입니다 (0) | 2022.0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