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33 _나의 이웃은 누구입니까?
2022년 7월 둘째 주 칼럼(2022.7.10. ~ 2022.7.16.)
성령강림절 후 다섯째 주일
신명기 30:9-14
골로새서 1:1-14
누가복음 10:25-37
지난 주에 이어서 누가복음 10장의 말씀을 살펴보게 됩니다. 이번에는 누가복음 10장에 두 번째 사건으로 ‘70인전도대파송’과 같이 누가특수자료입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좀 더 구체적으로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우리는 오늘 배우게 됩니다.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_눅10:25
율법교사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질문을 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이 멋진 이야기의 시작은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영원한 생명, 구원을 받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셨겠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잘 하면 구원을 받지!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율법교사도 동일하게 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이 말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 잘 믿고 종교생활 잘 하면 됩니다. 하는 대답과 같습니다.
우리는 질문에 추상적인 답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그 대답이 쉽기 때문입니다. 별 고민하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고 그럴 듯한 답을 했다는 만족감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에 답을 할 때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행히도 여기에서 대화가 끝나지 않습니다. 에수를 시험하기 위함인데 예수께서 시험에 넘어가지 않기에 또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이니이까?” 우리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다시 질문 해 보십시오.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나는 이웃을 누구라고 규명하고 있나?”
이제 좀 더 구체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좀 더 복음적인 삶을 사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_눅10:30
예수께서 보여주신 비유로 하나의 설정을 만듭니다. 강도 만난 모든 것을 다 잃고 심지어 목숨까지 거의 죽게 된 사람입니다. 그냥 그대로 두면 곧 죽게 될 사람입니다.
마침 여기에 종교계를 대표하는 ‘제사장’, ‘목사’가 지나갑니다. 또 종교계를 대표하는 ‘레위인, 장로, 권사, 집사’가 지나갑니다. 또 한 부류는 종교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오히려 업신여기고 천대여기는 사람으로 ‘사마리아인, 종교와 관계없는 시민’이 지나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종교적 행위로 가득 채워진 제사장과 레위인은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반면 종교인들로부터 천대받고 멸시받았던 사마리아인은 이웃을 돌아봅니다.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_눅10:33-35
사마리아인이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돌아보는 수준이 엄청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붓습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이웃이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붓는 지극정성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 정도의 정성을 쏟아 부을 수 있을까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 30:11-14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비유는 분명 나와는 관계가 없는 먼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신명기의 말씀 속에서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성경 말씀으로 주신 것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다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 매우 가까운 곳에 두셔서 우리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으니 우리가 충분히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우리가 찾는 하나님 나라의 삶의 태도는 사마리아인처럼 위기에 처한 이웃을 끝까지 돌보고 살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이 있기에 도우심을 바라고 이웃을 돌보는 일을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지 좀 더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만나는 이웃은 어떤 이웃들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위기에 처해서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많이 만나십니까?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이웃을 더 많이 만나십니까?
함께 고민해 볼 것은 지금 내가 만나는 이웃은 누구이고 그 이웃들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 나의 마음은 어떤지 등 다양한 부분을 놓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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