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148 _자기를 낮추는 자
2022년 10월 넷째 주 칼럼(2022.23.. ~ 2022.10.29.)
성령강림절 후 스무째 주일
예레미야 14:19-22
디모데후서 4:6-8
누가복음 18:9-14
오늘 누가복음 18장 9-14절의 말씀은 “바리새인과 세리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8장은 예수의 상경기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상경기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여느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과는 다른 여행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가는 걸음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가시는 길이기에 특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서는 상경기를 중요한 부분으로 기록합니다. 그 중 특히 누가복음은 상경기를 강조하며 많은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_눅18:9
누가복음 상경기에는 특히 제자들에게 하시는 비유의 말씀이 많이 기록됩니다. 앞으로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제자들이 믿음을 굳게 지키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제자로 살아갈 때에 정말 빠지기 쉬운 모습 중에 하나가 자신을 세우고, 다른 사람을 낮추는 모습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안주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낙관하거나, 자신이 하는 일에 과도하게 긍정하는 경우에 많이 나타납니다.
“이 정도면 됐지!”, “나 괜찮은 사람 아니야!”, “나 만큼만 해 보라지!”
성경은 이를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자기를 높이는 자”라고 기록합니다. 한 단어를 떠올린다면 “교만”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쉽게 교만에 빠기게 됩니다. 제자들이 경계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을 높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낮추게 되는 것입니다. 때론 무시하기도 하고, 하찮게 여기게 되기도 합니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더 낮지!”, “일을 왜 저렇게 하나”, “제가 얼마나 열심이 있는지 아시죠!”
성경은 이를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자기를 높이는 자”라고 기록합니다. 다른 사람을 더 낮게 여기고 멸시하는 것도 자신을 높이는 교만이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자신을 높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을 낮추는 말과 행동이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4장 19-22절은 백성들의 기도의 소리를 기록합니다. 백성들이 교만하여 하나님께 범죄한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선민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신을 낮게 여기는 교만이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영적 우매함에 빠지기 쉽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공동체의 모습을 돌아보고 잘 살아가고 있는지 부족한 부분은 무엇이 있는지 살피고 우상을 버려내야 합니다.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_렘14:20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_렘14:22
그럼 바울사도의 마지막 이 말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한 번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_딤후4:7-8
바울은 자신의 입으로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어, 나는 달려갈 길을 마쳤고 믿음을 지켰어, 나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자신을 높이고 자신이 잘 했다고 말하는게 아닌가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교만한 자의 모습, 자신을 높이는 자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쩌면 바울사도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설프게 따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자신이 영적인 사람인처럼 말이죠.
그 답은 6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_딤후 4:6
디모데후서는 바울사도의 마지막 서신서입니다. 로마 2차 투옥 중에 쓴 아들처럼 여긴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두 번째로 감옥에 투옥을 당하면서 이제는 자신의 생애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곧 순교를 당하게 될 것을 아는 상황에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처럼 여기던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으니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다른 사람을 낮추기 위해서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그대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전하다가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 이야기 하거나, 나는 이미 구원 받았고 나에게 면류관이 준비 되었다거나 하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분명 교만 중에 교만이 되겠지요.
기도하기는 바울처럼 하나님의 복음 전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며 하는 믿음의 고백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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