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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거룩한 삶이란?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01 _거룩한 삶이란?

2023년 10월 다섯째 주 칼럼(2023.10.29. ~ 2022.11.4.)

성령강림절 후 스물둘째 주일

 

레위기 19:15-18

데살로니가전서 2:1-8

마태복음 22:34-40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_레19:2

 

‘거룩’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주는 단어이다.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거룩한 삶’은 어떤 삶일까? 질문하게 된다.

 

성경에서 ‘거룩’을 주제로 다루는 말씀이 있다. 바로 ‘레위기’이다. 레위기의 주제가 ‘거룩’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_레19:1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거룩한 삶을 위해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레위기이다.

레위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레위기의 중심장은 19장이다. 중심장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의 원안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_레19:18

 

중심장에서 더 들어가면 중심구절을 보는데 그 중심구절이 레위기 19장 18절 말씀이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리스도인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데에서 시작한다.

 

레위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과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구조를 가지고 기록된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 분리되는 개념이 아닌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종교적 행위로 드려지는 제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도 계속해서 그것을 지적하신다. 그리고 그것들을 직접 깨뜨리시는 행동을 계속 이어가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거룩이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 보란 듯이 안식일에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더 많은 일을 행하셨다. 제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화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씀하신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성전중심으로 가던 유대교에도 폭탄을 던지셨다. 성전을 무너뜨리고 3일만에 다시 세우시겠다. 하신다. 이러한 흐름들은 종교적 행위가 곧 ‘거룩’이라고 생각했던 유대교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은 기도를 많이 한다고 제사(예배)를 많이 드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 비유에서 오른편에 선 양들의 질문에 답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곧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이 작은 예수가 되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사실 같은 의미가 된다. 삶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진정한 예배가 된다.

 

예수께서 마지막 예루살렘을 방문하시고 논쟁을 펼치실 때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곤란한 질문이라고 여기고 예수께 질문한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_마22:36

 

예수께서는 이 질문에 율법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시면서 답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_마22:37-39

 

신명기 6장 5절 쉐마 말씀과 레위기 19장 18절 레위기 중심절 말씀으로 답하신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고 제사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종교적 행위를 해야 하나님께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웃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않으면서 교회 안에서 예배드리는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보다 교회 건물 안에 갇혀서 생활하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한다.

 

바울사도가 어떻게 ‘거룩한 삶’, ‘예배의 삶’을 살았는지는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기록된다. 바울이 선교여행 중 받은 고난과 핍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방식과 태도에 대해 알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1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_살전2:7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_살전2:9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_살전2:11

 

바울은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르듯이 그렇게 정성껏 새롭게 예수를 믿게 된 자들을 사랑했다. 또한 무엇보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페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낫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잘못했을 때는 훈육하고 잘했을 때는 칭찬하며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그렇게 데살로니가 교회 교우들을 사랑했다.

 

바울은 사도로써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것도, 밤낮 일을 하면서 폐를 끼치지 않는 것도, 여러 고난과 능욕 속에서도 열심을 다 한 것도 모두 이웃을 사랑하는 바울의 삶의 태도이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어떻게 하고,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프로그램은 어떻게 하고, 모임은 어떻게 하라는 안내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이다.

그렇다고 바울의 이러한 삶의 방식이 단순히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맘에 들게 하려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가 있다. 이 부분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_살전2:4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이 거룩한 삶이지 않을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삶!

 

네 이웃을 찾고 이웃을 맘껏 사랑하고 함께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 이러한 공동체에는 사랑이 넘치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은 점점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될 것을 믿는다. 거룩한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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