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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기름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03 _기름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2023년 11월 둘째 주 칼럼(2023.11.12. ~ 2022.11.18.)

성령강림절 후 스물넷째 주일

 

아모스 5:18-24

데살로니가전서 4:13-18

마태복음 25:1-13

 

 

 

마태복음 25장은 예수의 종말에 관한 비유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하게 된다. “과연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_마25:13

 

우리는 주님께서 구름타고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루 하루를 마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매일 죽을상으로 오늘이 마지막이야! 기도에 전념하고 종교적 행위에 전념하라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25장 종말에 대한 비유의 말씀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오늘 함께 살펴볼 종말에 대한 첫 비유는 “열처녀의 비유”이다. 특히 종말론적 비유인 열처녀의 비유의 시작이 “천국은 마치”로 시작한다. 종말론적 삶은 곧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삶임을 말한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_마25:1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가 있다. 이 중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운 여인들이다. 미련한 여인들은 기름은 준비하지 않는다. 반면 슬기로운 여인들은 기름을 준비한다. 밤중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듣고 각자 준비한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다. 아뿔싸 미련한 여인들은 그때서야 자신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음을 알고 슬기로운 여인들에게 기름을 달라한다. 하지만 그 기름은 나눠줄 수 있는게 아니다. 각자 준비해야 할 기름이다. 미련한 여인들은 그때서야 급하게 기름을 사기 위해 뛰쳐나간다. 그 사이 신랑이 와서 슬기로운 여인들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혀버린다.

 

여기서 미련한 여인들과 슬기로운 여인들의 가장 큰 차이점을 발견한다. 바로 ‘기름’을 준비했느냐 안 했느냐이다.

 

‘기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과연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_마25:13

 

마지막 절 13절에서 조금의 힌트를 얻게 된다. ‘깨어 있는 것’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름’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에서 행해지는 어떤 행위와 같은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부가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는 것은 신부 된 그리스도인이 매일의 삶에서 깨어 있는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서에는 종말을 의미하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이 “여호와의 날”이다. 이 말은 종말을 의미한다. 아모스에도 “여호와의 날”이라는 단어가 기록되는데 참 흥미로운 여호와의 날에 대해 기록한다. 여호와의 날을 준비할 때 절기, 성회, 번제, 소재, 화목제를 드리는 것, 노랫소리, 비파소리가 앞에서 말한 열처녀의 비유에서 신부가 준비해야 하는 ‘기름’이 아니다. 지금 우리로 적용해 본다면, 주일성수,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새벽기도, 각종 기도회, 십일조, 감사헌금,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행사, 찬양, 찬양집회가 신부가 준비하는 ‘기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종교적 행위가 ‘기름’을 준비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래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교회 건물 안에서만 머물러 있는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_암5:21-23

 

하나님께서는 아모스를 통해 종교적 행위를 돌아보지 않고, 듣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대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흘러 넘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정의’와 ‘공의’리고 해서 사회적 정의와 공의로 좁혀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_암5:24

 

구약에서 정의와 공의는 ‘체다카’, ‘미쉬파트’라는 단어가 쓰인다. ‘체다카’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의롭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미쉬파트는 레위기 19장과 같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의로 자주 사용된다. 정의와 공의로 가득한 삶을 사셨던 분이 예수이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사셨고 슬기로운 여인들처럼 계속해서 ‘기름’을 준비하는 삶을 사셨다. 예수께서 하신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성전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었다. 종교적 행위, 율법적 행위와 같은 일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었다. 특히 소외되고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계속헤서 돌보는 일을 행하셨다. 우리가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여인이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람 중심의 공동체를 세워가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이웃이라는 개념을 좀 더 넓혀서 생각한다면 꼭 사람이 아닌 환경과 동물, 사회정의를 이루는 일들까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 된다. 환경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환경파괴로 위험에 처한 동물들을 보호하고 우리 주변에 만나는 동물들을 사랑하고 아낄 수 있어야 한다. 곳곳에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보는 일들까지 세상 속에 ‘기름’을 준비하는 일들이 많이 있다. ‘기름’은 미련한 여인들처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신랑이신 주님이 오실 때는 이미 늦어버린다.

우리는 의도적으로라도 더 밖으로 밖으로 나가서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 종말의 순간에 주님께서 구름타고 오실 때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며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은 자들도 함께 하늘로 들려 올려져 구름 속에서 주님과 함께 다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진짜 종말의 순간의 모습이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_살전4:16-17

 

기름이 준비된 신부는 바로 이때 저 하늘에 올려져 주님을 만나게 되는 영광을 맞보게 된다. 생각만 해도 기대가 되고 가슴 설레이는 순간이다. 더욱 주님 만나게 될 날을 소망하게 된다. 종말의 날은 구원의 날이요, 기쁨의 날이다.

 

여러분은 ‘기름’이 준비되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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