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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우리는 양인가? 염소인가?

 

‘집에 있는 교회’ 칼럼 #205 _우리는 양인가? 염소인가?

2023년 11월 넷째 주 칼럼(2023.11.26. ~ 2022.12.2.)

왕이신 그리스도의 주일

 

에스겔 34:11-16

에베소서 1:15-23

마태복음 25:31-46

 

 

 

오늘은 왕이신 그리스도주일이다. 교회력으로 2023년 마지막 주일이 된다. 다음 주부터는 2024년의 시작을 알리는 대림절이 시작된다.

2023년도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와 우리 가정마다 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올해 우리에게 주시는 마지막 말씀은 ‘종말’에 대한 말씀이다. 더욱 경각심을 갖고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소망한다.

 

이번 주도 이어서 ‘종말’에 대한 말씀을 나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동물은 양이다. 양은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양을 돌보는 목자는 먼저는 하나님, 주님, 예수이시다. 더 나아가서는 교회의 리더, 목사가 목자가 되어 양들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목자는 주님 한 분 뿐이시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양의 무리가 된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_겔 34: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을 찾으신다. 양을 찾으신 이유는 흐리고 캄캄한 날에 양들을 건져내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양들을 찾아 구원하신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도 양들은 구원을 받는다.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_겔 34:12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양과 비슷한 동물이 있다. 양과 비슷해서 구분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바로 ‘염소’이다. 성경에서도 양과 염소를 비교한다. 얼핏보기에는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두 동물의 성향과 기질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양과 염소를 구분하시고 양을 찾으신다. 이 말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두 종류의 사람을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말도 된다. 우리는 양인가? 염소인가? 어쩌면 이 땅에서 구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심판대 앞에서, 또는 마지막 날에는 구분이 된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_마 25:32

 

감사하게도 예수께서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말씀에서 양과 염소를 어떻게 구분하시고 오른편에 선 양이 구원을 받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그렇게도 찾으시던 양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도 그냥 살아가지 않았다. 사람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대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지극히 작은 자들을 끊임없이 살피고 돌본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_마 25:35-36

 

오른편에 선 양들은 자신들에게 말하는 이 말을 듣고 우리가 언제 주님께 이렇게 대했는지 묻는다. 이때 주님께서는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_마 25:40

 

우리는 여기에서 양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구원을 받는 조건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대 앞에서 보는 것은 종교적 열심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사랑임을 알 수 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갇힌 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보살피고 살피는 것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조건임을 말씀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 누군가는 그렇다면 종교적 열심은 아무 의미가 없냐? 물을 수도 있다. 양과 같은 삶은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 또한 특별하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 부분은 많이 걱정하거나 고민할 부분이 아니다. 무엇보다 작은 자는 곧 작은 예수가 되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된다.

 

종말론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작은 자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2023년 마지막 주일에 함께 기도하면 좋을 바울의 기도문을 나눠본다. 에베소서 1장 15-23절에 기록된 바울의 기도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_엡 1:17

 

하나님 아버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옵소서. 우리의 힘과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사오니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을 아는 자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더욱 힘쓰는 자 되게 하옵소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_엡 1:18

 

하나님께서는 우리는 이 땅에 보내시고 각자에게 부르심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눈의 밝혀지지 않으면 부르심의 소망을 따라 살아갈 수 없사오니 막혔던 우리의 눈을, 가려졌던 우리의 눈을, 비늘에 덮여있던 우리의 마음의 눈을 환히 밝혀 주옵소서. 지금까지 보지못했던 부르심의 소망을 보게 하시고 그 소망을 따라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놀라운 영광의 풍성함을 덧입혀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자가 가진 놀라운 영광의 풍성함은 보지 못하고 단점과 연약한 점만 보고 서로를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서로를 바라 볼 때마다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볼 수 있게 하옵소서.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_엡 1:19

 

2023년 하나님의 힘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되돌아보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망각으로 계속해서 잊어버립니다. 마치 내가 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지금까지 역하시고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분명하게 아는 자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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