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교회’ 칼럼 #209 _수태고지(Annunciation)
2023년 12월 셋째 주 칼럼(2023.12.24. ~ 2022.12.30.)
대림절 넷째 주일
사무엘하 7:1-11
로마서 16:25-27
누가복음 1:26-38
누가복음 1장 26절에서 38절은 “수태고지”에 대한 말씀본문이다. 이번에는 ‘수태고지’와 관련된 미술작품들을 보면서 성경의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함께 살펴보면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주된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하였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_눅6:26-27
미술작품 가운데 날개 달린 천사와 한 여인이 등장하고 그 천사가 여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다면, 그 작품의 제목은 분명 ‘수태고지(Annunciation)’일 것이다. 수태고지는 ‘알리다’라는 뜻의 라틴어 동사 ‘아눈티아레, annuntiare’에서 유래한 고유명사이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 탄생의 이야기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 나타나 예수의 잉태를 예고한 부분을 가리킨다. 성경의 이 이야기는 5세기 이래 서구 미술의 주요한 주제로 다루어졌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해당하는 비잔틴 미술에에서는 예배의식에 사용되었던 필사본의 삽화로 사용되었다. 중세 로마네스크와 고딕 미술에서는 벽화와 성당 조각 및 스테인글라스로 표현되었고, 15세기 이후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을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걸출한 화가들의 뛰어난 회화 작품들로 표현되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이들은 왜 ‘수태고지’를 그렸을까?
그리스도교에서 수태고지는 신의 아들인 예수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얻게 되는 첫 순간이자 신을 탄생케 한 여자로서의 마리아를 예고하는 순간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예수 탄생일인 12월 25일로부터 9달 전인 3월 25일에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이날은 과거 아담이 진흙에서 창조된 날이자 훗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이기도 하다. 이날은 또한 당시 유럽 여러 나라들이 전통적으로 초하룻날로 여겨온 날로서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희망의 계절을 기대하는 날이었다.
신학자들이 수태고지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말씀의 육화, 성육신, incanation’라는 신학적 개념이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바로 그 순간, 말씀은 마리아의 자궁 안에서 수태되어 몸이 만들어지고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 수태고지는 예수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록이었다.
천사 가브리엘과 나사렛 처녀 마리아의 대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성경의 수태고지 장면은 초기 그리스도교시기부터 제작된 이콘(Icon, 성상화)과 필사본 삽화,, 벽화 등을 통해 표현되었다. 아쉽게도 현재 전하는 수태고지 도상은 성상파괴운동 기간(726-843) 이후에 제작된 것이다. 동방정교회 이콘의 경우는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라는 두 등장인물을 내세운 수태고지의 기본 구성을 그대로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서방 그리스도교에서는 미술에 표현된 수태고지 장면을 성경 이외에 다른 문헌들을 참고하여 그리기도 했다.
성경을 제외하고 초기 그리스도교시기부터 수태고지 도상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문헌은 [야고보의 원복음서]이다. 여기에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마리아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내용과 함께 수태고지 일화가 담겨져 있다. 천사 가브리엘이 먼저 우물가에서 물을 긷는 마리아에게 음성으로 축복하고, 그 뒤 집에 돌아와 자주색 실을 짓는 마리아를 찾아와 예수의 잉태를 알리는 두 단계로 되어 있다. 수태고지 도상에 종종 등장하는 우물, 물주전자, 자주색 베일, 물레 가락 등은 바로 ‘야고보의 원복음서’에서 비롯된 것이다.
외경과 동방 전설에 영향을 받은 성서 이외의 문헌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이후 지속적으로 제작된 수태고지 도상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것은 장면에 대한 다양성을 부여했다. 여기에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미감과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이 더해지면서 수태고지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작가마다 독창성을 띄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수태고지 장면에는 주요인물인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등장한다. 이를 기본으로 성부를 나타내는 중앙의 빛 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빛줄기와 비둘기, 그리고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다 하며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 등이 나타난다. 여기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게 된다. 동방의 수태고지 작품들에 그려진 천사 가브리엘은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거나 홀을 들고 있다. 반면 서방의 경우 주로 백합을 들고 있다.
1333년에 시모네 마르티니의 작품에서는 홀 대신 올리브 나뭇가지로 바뀐다. 거기에 백합이 꽃병에 꽂힌 형태로 배치되기도 한다. 꽃병을 가로지르는 글자는 지금 마리아의 집에 도착한 천사 가브리엘이 건네는 말로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는 누가복음 구절이다. 성경 이사야 7장 14절을 읽고 있던 마리아가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곧 손을 가슴에 얹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려는 제스처를 하고 있다.
수태고지 장면에서 마리아의 모습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5가지 상태로 표현된다. 첫 번째는 천사의 출현으로 경이로워하는 당혹의 상태, 두 번째는 천사가 전하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생각하는 심사숙고의 상태, 세 번째는 마리아에게 천사가 ‘신의 은총으로 예수를 낳을 것이다’말하자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는 질문의 상태, 네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순종의 상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그 순간 천사가 떠나가고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게 되는 상태이다. 시모네 마르티니가 그린 마리아는 첫 번째 상태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을 묘사한 듯하다.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도미니코회 수도사였던 프라 안젤리코는 원근법과 같은 당대의 기술과 수도사로서의 신학적 지식을 반영한 수태고지 장면을 표현해냈다. 그가 그린 15점의 수태고지 장면 가운데 코르토나에 있는 작품은 르네상스식 건물 안에 천사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기둥을 사이에 두고 등장한다. 그들의 대화는 세 줄의 문구로 쓰여져 있는데, 첫 줄과 마지막 줄의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는 천사의 말, 두 번째 줄에 거꾸로 쓰인 마리아의 응답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그려졌다. 이 밖에 작품 왼쪽 상단에 보이는 추방당한 아담과 이브의 모습은 구약에서 신약으로의 전환을 나타내고, 기둥과 같은 건축요소와 꽃이 가득한 정원은 각각 신의 형상과 마리아의 순결한 장소임을 뜻하면서 에수의 ‘성육신’을 설명하는 상징적 모티브로 도입되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수태고지 장면은 특이하게도 실외를 배경으로 옆으로 길게 그러졌는데 상상력이 가미된 인물들의 제스처에서 그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같은 공방 출신 로렌조 디 크레디의 수태고지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가로로 긴 화면과 인물의 구성 등에서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레오나르도, 로렌조와 함께 베로키오의 제자로서 같은 공방을 다닌 또 다른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는 그 특유의 섬세한 표현으로 말씀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 손과 이를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손을 긴장감 있게 묘사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중심으로 널리 제작된 수태고지 작품들은 이후 바로크 시기를 거쳐 19세기 중세풍의 유행에 힘입어 지속적으로 그려졌다. 스페인 화가 엘 그레코는 역동적인 선과 색채로 다수의 수태고지 장면들을 남겼다.
이 밖에도 19세기 화가로서 수태고지를 주제로 다룬 화가로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 영국에서 라파엘전파를 이끌며 중세미술의 부활을 도모한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에드워드 번-존스 등을 들 수 있다. 로세티와 번-존스가 그린 마리아는 성모를 상징하는 푸른 망토도 입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들의 작품은 수태고지에 담긴 중세의 신학적 메시지와 도상 전통을 따른다기보다는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화가의 특징이 가미된 수태고지 장면의 현대적 변용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경에서 비롯된 수태고지 주제는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하는 서구의 전통적인 미술에서 시작되어 19세가를 거쳐 오늘날에까지 그 맥이 이어져오고 있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_롬16:25-27
로마서는 마지막 16장 25-27절에서 송영으로 마무리 한다. 이 송용을 “계시의 찬가”라고 부른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를 따라 그 시대 사람을 통해 계시를 보여주시고 지혜를 더하여 주신다. 그렇기에 같은 장면의 모습도 그 시대마다 또한 누가 그렸느냐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각 시대마다의 특징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과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수태고지’를 통해 이를 얼마나 다앙하게 해석하고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나에게 주시는 계시와 지혜의 영을 받아 우리의 감성을 담아 수태고지를 표현해 보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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