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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집에 있는 교회 칼럼’ #80_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2021년 5월 다섯째 주 칼럼(2021.5.30. ~ 2021.6.5.)

삼위일체주일 성서일과

 

이사야 6:1-8

로마서 8:12-17

요한복음 3:1-17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교회력에서 비축제 기간인 ‘보혜사 성령의 계절’의 첫 번째 주일이 ‘삼위일체주일’로 시 작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우리의 삶 가운데 드러나 보여야 함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우리 삶 가운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일어나기 위해 오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_롬8:14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합니다. 그 이유를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영’이 곧 ‘양자의 영’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_롬8:15

 

양자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왔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아빠 아버지’라고 하나님을 향해 불렀던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기도하실 때 하나님을 향해 부르셨던 호칭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향해 부르셨던 바로 그 호칭을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가 동일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막14:36,갈4: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_막14:36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바울사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음에 대해 더욱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영, 예수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예수께서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해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옆에 계십니다. 우리는 그저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_갈4:6

 

그런데 우리가 ‘양자의 영’을 정말로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어떻게 확인이 가능할까요? 그냥 “내가 예수 믿으니 나는 하나님의 자녀야” 말한다고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요? 다른 누군가가 당은을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요. 말한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까?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_롬8:17

 

바울사도는 양자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의 영과 더불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한다고 말씀합니다. 앞에서 살펴본 예수께서 하나님의 향해 아빠 아버지라 부르시며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이셨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모습이 하나님의 자녀에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삶을 살아가면 자연스럽게 그의 삶으로 증언이 됩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_마25:35-36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주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주고, 병들었을 때 돌봐주고, 옥에 갇혔을 때에 가서 함께 해 주는 이러한 모습이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거부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야 할 사명으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_사6:8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셨습니다. 그 부르심에 이사야는 담대히 말합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의 영, 양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께서 걸어가셨던 삶으로 우리를 부르실 때 담대히 나아갑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주린 자가 있을 때, 목마른 자가 있을 때, 나그네가 있을 때, 헐벗은 자가 있을 때, 병든 자가 있을 때, 옥에 갇힌 자가 있을 때 그들을 피해 도망하지 않고 그들에게 나아갑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그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하나님의 이러한 부르심을 듣고 엄청난 고뇌에 빠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 등장하는 ‘니고데모’입니다. 예수께서는 니고데모를 향해 ‘거듭남’에 대해 말씀합니다. 니고데모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총망받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율법과 종교에 능숙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종교적 행위,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에서 이제는 ‘성령의 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그러하니라” _요3:8

 

우리는 어쩌면 여전히 거듭나지 못하고 육적인 것을 더 추구하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보다 종교적 행위를 앞세우고, 종교적으로 행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교회 일, 교회 봉사, 교회 건축에 열을 세우는지도 모릅니다. 예수께서는 ‘일’이 아닌 ‘사람’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이런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을 위해 일 하는 것이 거듭난 자들이 추구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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