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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끈공동체 금요칼럼

낮아짐의 미학

‘집에 있는 교회 칼럼 #82_ 낮아짐의 미학

 

2021년 6월 둘째 주 칼럼(2021.6.13. ~ 2021.6.19.)

성령강림절 후 셋째 주일 성서일과

 

에스겔 17:22-24

고린도후서 5:6-10,14-17

마가복음 4:26-34

 

 

 

오늘은 성경 저변에 흐르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신다.” 이 기본적인 진리는 성경의 저변에 흐르는 큰 흐름 중 하나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도 이러한 흐름 중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에스겔 17장 22-24절에서도 높은 나무를 낮추시고 낮은 나무를 높이신다는 나무 비유로 기본적인 진리에 대해 기록합니다.

 

“들의 모든 나무가 나 여호와는 높은 나무를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는 줄 알리라 나 여호와는 말하고 이루느니라” _겔17:24

 

자신을 높이는 자,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자,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이러한 기조는 성경에서 아주 중요한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더욱더 낮추고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스스로를 낮추면 자신이 더 높아지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까?

 

자신을 낮추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앞으로 자신이 높아질 것을 예상하고 자신을 낮추는 흉내를 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4장에는 세 가지 하나님 나라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두 번째, 세 번째 비유의 말씀을 살펴보면 두 비유가 가지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둘 다 ‘씨’입니다. 씨라는 것은 작습니다. 너무도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런데 그 작던 씨앗이 스스로 자라기 시작하고 싹이 나고 이삭이 되고 열매가 됩니다. 겨자씨는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가 깃들일 만큼 커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작은 씨처럼 살아가는 나라이고 이렇게 작은 자로 살아가면 자신이 높이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고 열매를 맺고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바로 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에도 낮은 자를 높이시는 성경의 기본적 진리가 그대로 담겨져 있습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_막4:28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_막4:32

 

우리가 작은 자로 스스로를 낮춰야하는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작은 씨가 땅에 심겨진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로 살아가는 자들이 누리는 나라입니다. 그렇게 작은 자로 살아가면 공중의 새들이 깃들입니다.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지옥 같은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잘 살펴보면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행동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작은 자로 스스로를 낮춰야하는 두 번째 이유는 각각 선악간에 우리가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겸손은 나 자신은 완전히 내려놓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_고후4:8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_고후4:10

 

우리의 힘과 능력과 경험으로 해결해 나가려고만 하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결코 겸손한 행동이 될 수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나를 버리고 주님과 함께 했느냐는 결국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판가름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고의 겸손인 나를 버리고 주님만 의지하게 되면 그만큼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보응을 받게 됩니다. 보응을 받는다는 것은 곧 구원을 의미합니다. 낮은 자의 미학은 구원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구원의 반열에 오른 자 중에 겸손하지 않은 자가 없습니다. 이 말은 교만하면 구원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작은 자로 스스로를 낮춰야하는 세 번째 이유는 자신 스스로를 낮출 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 땅에서 받는 상급입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자신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이면서 역사적으로도 우리의 삶을 보더라도 스스로를 낮추고 살아갈 때에 누리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작은 자로 스스로 낮춰야하는 네 번째 이유는 자신을 스스로 낮춤으로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매일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됩니다. 나를 낮추어서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납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이자만 그것이 매일 새롭게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우리는 함께 작은 자로 스스로 낮춰야 하는 네 가지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바로 이 네 가지 이유가 ‘낮아짐의 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네 가지 이유를 생각하며 스스로 낮아짐을 선택할 때 누리게 되는 것들이 됩니다.

 

낮아짐의 미학 첫 번째,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입니다. 두 번째, 마지막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이 아닌 구원을 받습니다. 세 번째, 스스로 높이지 않는데도 높임을 받습니다. 네 번째, 매일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서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아끈공동체 모든 구성원 가운데 ‘낮아짐의 미학’이 깊이 있게 새겨져서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고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하루 하루의 생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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