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역동적 삼위일체성

 

‘집에 있는 교회 칼럼’ #129 _역동적 삼위일체성

 

2022년 6월 둘째 주 칼럼(2022.6.12. ~ 2022.6.18.)

삼위일체주일

 

잠언 8:22-31

로마서 5:1-8

요한복음 16:12-15

 

 

보혜사 성령의 계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령강림절 후 첫째 주일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삼위일체주일에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삼위일체의 원리를 우리의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입니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_요16:15

 

저희가 홈스쿨을 시작하고 GPN이라는 홈스쿨 네트워크에서 진행하는 캠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GPN을 설립하시고 운영해 가시는 대표님이 임종원 선생님이신데 그 분의 글 중에 홈스쿨의 주도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홈스쿨에서 주도자는 부모도 학생도 아닌 부모와 학생, 하나님이 함께 주도자가 되어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것을 임종원 선생님께서는 “자녀 양육의 역동적 삼위일체성”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자녀 양육의 역동적 삼위일체성”이 성경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원리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교육에 있어서 역동적 삼위일체성을 보면서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이를 교육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얼마든지 충분히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먼저 교육에 있어서 “역동적 삼위일체성”을 적용했던 우리 가정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살 때부터 우드누 삼형제는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살고 있기에 키우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고 마당이 있는 집이 생기면 그때는 한 번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애들에게는 마당 있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대로 정말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마당으로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지만 반려견을 키우자는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는 지인 분으로부터 강아지 분양받아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제안을 받고 나서 사형제와 함께 가족 회의를 열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 키울 수 있다고 했으니 키우자고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부는 개를 키우면 생기는 여러 가지 힘든 점과 불편한 점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보다는 어른들의 의견으로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의견을 모두 무시한 처사가 되다 보니 아이들도 받아드리기가 어렵고 저와 아내의 마음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다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반려견을 분양받는 것을 진행해 보자고 했습니다.

먼저 주인 집으로부터 허락이 있어야 하고, 아직까지 분양되지 않은 강아지가 남아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 주었습니다.

 

주인 집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생각보다 쉽게 저희 부부의 생각이 점철되었습니다. 주인 집에서 ‘멍개’라는 개를 키우고 있어서 당연히 허락하실 줄 알았는데 개를 키우기 어렵다는 대답이 왔습니다. 개가 짓거나 하면 옆집에 방해가 되어서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자 아이들도 개를 키우지 못하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부모인 우리에게도 모두 상처가 되지 않을 수 있는 선에서 잘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는 너무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권면했습니다. “우리 기도는 하자! 혹시 아니 사장님의 마음이 바뀌실 수도 있고 키울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잖아! 정말 너희들이 키우고 싶다고 기도하자!” 그리고 주변에 아는 분들에게도 기도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 그 다음 날 주인 집 사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저희 집 앞에 사시던 분이 이사를 가시고 새로 이사온 분이 결정되어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새로 이사 오시는 분이 반려견을 키우기 위해 이사오는 분이라는 거였습니다. 계약하기 전에 저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나서 먼저 저에게 말씀을 드리고 계약을 해야 할 것 같다면서 혹시 개를 키우시려면 뒷마당에 사람이 잘 안 보이는 곳에서 키우라고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알렸고 강아지가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7마리 중 6마리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이가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림이를 입양하는 이 과정이 앞에서 말한 “역동적 삼위일체성”의 원리로 이루어진 과정입니다. 자녀들의 요구와 생각, 부모의 요구와 생각,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지는 이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일방적인 부모의 요구로 삼위일체성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시 자녀들의 요구와 생각을 인정했고 부모의 요구와 생각도 충분히 나눴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일 하시도록 함께 기도하였고 그 기도가 응답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동적 삼위일체의 원리가 가정에서도 우리가 속한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어느 곳에서든지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원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령강림절의 계절에 이 “역동적 삼위일체성”이 우리의 삶에, 각 가정에 잘 이루어질 수 있다면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역동적 삼위일체성을 이루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어느 한 쪽의 의견만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세 주체가 함께 균형을 이루며 가야 합니다. 때론 남편과 아내,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성을 이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론 사장과 종업원,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성을 이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론 자녀와 부모, 하나님이라는 삼위일체성을 이루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삼위일체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칼럼을 보시면서 성경에서 한 번 찾아보시고 적용해 보시는 것도 너무도 좋은 성경공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아끈공동체 금요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의 열매가 풍성히  (0) 2022.06.23
그 어떤 것도 사람을 앞서지 않게  (1) 2022.06.17
유월절과 오순절 사이  (0) 2022.06.03
빌립보공동체(교회)  (0) 2022.05.26
천국에 성전이 없다  (0) 2022.05.20